4. 전쟁의 아이들

1941년 여름, 네덜란드 거주 유대인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작업이절정에 다다랐다. 유대인 등록제 이후 유대인의 이동의 자유는 제한됐을 뿐 아니라 더이상 시장이나 수영장, 해변 등 공공장소에도 출입할 수 없었다. 유대인 소유 회사들은 국가에 강제로 귀속됐고 라디오방송사는 압류됐다. - P60

8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암스테르담 시의 공무원들은 점묘도작성에 동원됐다. 암스테르담 지도에 유대인 거주지의 정확한 위치와거주민 숫자를 점으로 표시하는 작업이었다. 점 하나가 유대인 열 명을 뜻했다. 어디서 얼마나 더 검문해야 할지가 한눈에 보였다. 어떤지역은 점이 빽빽한 반면 어떤 지역은 드문드문하거나 일정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네덜란드 정부의 별다른 저항 없이 유대계시민들은 네덜란드 사회에서 격리되고 상세하게 기록되며 기본권과존엄성을 빼앗겼다.
이진수있다 - P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됐다. 전쟁 이후 나치의 테러에서 벗어나 맞이하게 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사람들은 매일을 살아갈 힘을얻었다. 심지어 자매의 동료들 중에는 출산을 앞둔 부부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린테와 에베르하르트는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다. 1935년 제정된 뉘른베르크 법으로 인해 유대인과 독일인 간의 혼인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린테는 여전히 연인과 사이가 좋았고 그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 P60

... 야니와 보프는 저항활동에 헌신하는 와중에도아들을 기르며 큰 행복을 느꼈다. 미케와 하콘 스토테인 부부 역시 딸 레네를 낳고 기쁨을 누리는 중이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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