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나에 대하여
이제 다시 범고래와 만났다. 고래와의 만남은 매번 놀랍다.


로나에 대하여
날이 이미 밝은 어느 아침, 내가 대야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스튜어트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침 일찍 북쪽 사면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언덕 꼭대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가리켰다. 바람의 방향이 밤사이에 살짝 바뀌었고, 바다는 하얀 파도가 살짝이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던 순간-나는수건을 꽉 움켜쥐었다가넷 한 무리, 열에서 열두 마리가 섬으로부터 반 마일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들의 날개는 햇빛을 받아 파파라치의 카메라불빛처럼 느리고 하얗게 깜빡거렸다. 그것이 내가 처음 목격한 모습이었다. 가넷은 흐느적거리고 축 처져서 독특한 방식으로 날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화살 대형이 아니라 물 위에 낮게 무리지어 있었다. - P223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폴 소사텀Poll Thothatom 이라고 하는 좁은 만의 절벽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온 곳이었다. 급경사였지만 목이 부러질 걱정 없이 물가로 뛰어들 수 있는 순한 비탈이 하나 있었다. 이제 만의 입구에서 바다가 뒤로 넓게 펼쳐진 가운데 다섯 개의 까만 지느러미가 수면을 갈랐다.
범고래였다. 지느러미가 햇빛에 반들거렸다. 
길고 똑바른 수컷의 지느러미가 하나, 나머지 넷은 길이가 더 짧고 구부러졌다. 가넷은 이미 꽁무니를 뺐다. 범고래가 천천히 서로를 돌고 있었다. 이따금씩 조용히 물을 뿜으면서 등 부위가 수면으로 올라와 고리 모양의 산호섬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략을 짜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듯보였다. - P224

파도가 여전히 희미하게 바위를 쓸고 지나갔다. 물과 바위가 만나는 바로 그곳에서 네 마리 범고래가 일렬로 정렬해 있었다. 흥분한 상태였는데도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눈 앞에 정말로 커다란 네 마리 범고래가 있었다. 하지만 흑백의 얼룩덜룩한 제복에서 뭔가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눈 뒤에 있는 흰색 부위였다. 저주의 눈길을 돌리는 거울이나 부적처럼 그 부위가 쳐다보는 시선을 왜곡하는 것 같았다. - P225

범고래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섬에 딱 붙어서 윤곽선을 따라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위에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또다시나는 범고래를 뒤쫓아 절벽 꼭대기를 달리고 있었다. 또다시! 작년에 셰틀랜드에 갔을 때랑 똑같았다. 그때는 내 친구 팀이 옆에 있었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절벽을 따라 달렸다. - P225

우리는 범고래 네 마리가 섬 전체를 한 바퀴 돌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들이 시어풀의 가장자리를 돌아 섬의 서쪽으로 올라올 터이므로 우리 세 명은 그랑프리 대회의 관람객처럼 지름길을 택해 섬에서 가장 높은 언덕까지 질주한 다음 가파른 북쪽 사면으로 황급히 내달렸다. 그곳에 또 하나의 좁은 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섬을 거의 두 쪽으로 쪼갤 정도로 무척이나 긴 만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빠르게 내달리는 범고래를 다시 볼 수 있다. - P227

목구멍 위로 위산이 올라오고, 피 맛이 느껴지고, 잔디밭과 하늘이 번쩍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내 몸뚱어리가 동물의몸임을 새삼 깨달았다. 근육과 신경으로 이루어진 존재. 범고래도다를 바 없었다. 위압적인 동물의 몸으로 얼룩덜룩한 흑백을 걸치고우리를 완전히 압도한다. 우리는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범고래가 뾰족한 곳을 전속력으로 돌아 저 아래 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솜털오리eider duck 두 마리가 놀라 달아나는 가운데 범고래는 질주를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그들이 물속에서 솟구칠 때 내가 똑바로 보았지만, 또다시 눈 뒤쪽의 흰색 부위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흑백은 마술사의 옷이다. 관객을 미혹시키고, 손장난으로 물건을 사라지게 한다.
- P227

잠깐, 우리는 수컷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뒤에 혼자 남겨진 수컷 말이다. 아래에 있는 좁은 만을 내려다보았는데 그곳에 녀석이있었다. 절벽을 돌아 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까만 등지느러미가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마치 쟁반에 담아 균형을 잡으려는 듯 보였다. 헤엄칠 때 지느러미가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이번에는 우리 셋이 말없이 서 있었다. 뭔가 달랐다. 다른 종류의 긴장, 국부적이고 특별한 긴장이 흘렀다. 속도감 넘치고 활기찬 암컷 뒤에 온 이 녀석은 고독한 기운을 풍겼다. 암컷들이 자기들 할일을 하는 동안 예의상 뒤로 물러나 있었던 모양새였다.
그런 그가 이제 나섰다.
- P227

우리가 가져온 필수품에 와인이 많아서 그날 저녁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나는 첫 번째 녀석이 몸을 돌리고 옆구리로 바위의  풀들을 맛보는 듯했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제야 땅의 냄새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래목은 냄새를 맡지 못한다. 개와 달라서 냄새를 맡는 기관이 없다. 그들은 고작 20야드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와 다른 감각 세계에 살았다. 나는 인간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P230

피가 없었다. 우리는 피투성이 상황에 대비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바다표범은 진짜 습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들은 범고래가 자신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을까? 주위에 바다표범이 많았는데, 범고래는 어떤 녀석도, 외로운 몽상가도 취하지 않았다. 한가하게 빈둥거리는 녀석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마술지팡이를 휘두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지? 그저 재고품을 확인하는 차원이었을까? 요란하게 몰려와 찬장의 문을 쾅 열고는 뭐가 있는지 알아본 것일까? 아니면 더 그럴듯한 추정으로 어쩌면 연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두 어미가 자식들을 범고래의 방식으로 훈련시키는 광경을 본 것이다. 잘 보고 따라해. 
이렇게, 이렇게. - P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