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주주의의 그림자 다비드가 그의 그림을 제작했을 때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들 아래 있는 다수가 무력하고 우둔하며 무책임하다는 것을 자명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혁명의 사례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똑같은 단어들을 계속해서 말했다. 폭도(la populace), 군중(la foule), 대중(lacanaille). 그러한 단어들은 도덕적인 타락과 정치적 불안을 환기시켰다. 그것들은 반달리즘과 공포, 그리고 그들이 국가가 길들이고 종속시키고 심지어 전멸시켜야 하는 세력이라는 연상을 마음에 심어 주었다. - P12
대중은 유연한 성분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대중‘은 생각할 수있는 모든 방향으로 구부러지고 잡아 늘여진 단어이다. 혁명을 시각화하려는 다비드의 시도 후 수십 년 동안 이미 이 단어의 사용은 여러 차례 변화했고 각각 새로운 의미를 끌어당겼다.
우선 대중은 양과 수, 인구 통계와 연관되었다. 두번째 국면에서 ‘대중들은 빅토르 위고가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부른 사회 밑바닥의 가난하고 궁핍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암시하게 된다. 1848년 이래로 대중들은 조직화된 노동운동과 연관되었다. 1871년과 파리코뮌 후에 마지막으로 대중들은 병리적인 요소로 정의되었다. 이제 다수의 영향력 있는 과학자와 사회이론가들은 하층계급이 그들의 원시적인 본능이 풀려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능력이 퇴화되는 질병, 즉 ‘대중의 광기‘로 오염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종류의 정신적인 전염병은 떼 지어 나타나거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모든 인간을 괴롭혔고, 이 질병은 정치적으로 조직화한 하층계급의 사람들에게 가장 흔했다고 이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 P13
물론 대중들이 단순히 민주주의 사상이 출현한 결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한 역사적 순서로 이 문제를 설명하면, 수많은 사람들 또는 대중들이 사회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주장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민주주의 사상이 나타났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농민과 장인, 노동자를몰아내고 시골에서 도시로의 대이주를 이끌면서 길드 체제를 침식하고 시골의 생활양식을 변형시켰기 때문에, 소수의 유럽 도시들은 도시적이고 산업화된 중심지가 되고 주민들은 조밀한 인구 집중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회계급은 매우 근접하게 병치되어 서로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었다. 더 부유한 시민들은 문을 잠그고 방에 틀어박혀 벨벳 커튼을 쳐 놓았지만 결국 산업 공장의 매연과 작업일의 리듬을 나타내는 공장의 경적 소리, 인구가 많은 노동계급의 광경과 소음, 냄새를 피할 수는 없었다. - P21
버크는 혁명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군중‘(crowd)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대중들‘(masses)을 근대의 경멸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1790년에 ‘대중‘과 ‘대중들‘은 여전히 명시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과 물건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용어다." 대신에, 버크는 인민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기이하고 전근대적인 관용구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때로는 불길한 것이고 때로는 깔보는 것이다. ‘폭도‘(the mob)는 두어 페이지마다 한 번씩 등장한다. 혁명의 지지자들은 이제 야만인, 포악한 짐승,무지한 어린이에 비유된다. 하나의 공인된 표현은 "돼지 같은 다중"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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