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누운 밤》
하... 모든 단편들이 ... 하나같이 끝 문장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작가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다!
굉장히 뛰어난 단편 환상 소설의 세계 속에서 같이 헤매고 혼란스러워하고 공포 속에 잠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부고속도로

모든 일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발생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시작되었고, 그 일을맨 처음 안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씸까 지붕에 올라간 청년은 즐겁게 망을 보면서 지평선이 변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태양은 희미한 빛을 내면서 지평선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불분명하지만 무슨 일이 오백 미터 전방에서, 사백 미터 전방에서, 이백오십 미터 전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P222

청년은 엔지니어에게 소리쳤다. 엔지니어가 도핀 아가씨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자 급히 자기 차로 돌아갔다. 이미 타우누스, 군인, 아리안 농부는 승용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씸까 청년은 차 위에서 앞을 가리키며 쉼 없이 반복했다. 마치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한 것 같았다. 그때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꾸역꾸역 움직이던 이민행렬이 깊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용을 쓰는 듯했다. 
타우누스는 큰 소리로 각자 자기 차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보리외, ID, 피아뜨 600, 데소토가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2HP, 타우누스, 씸까, 아리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으쓱해진 씸까 청년은 
뿌조 404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뿌조 404, 도핀, 수녀들이 타고 있는 2HP, DKW도 출발했다. 그러나 얼마나 이렇게 달리느냐가 문제였다. 습관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던 백조 404는 도핀과 나란히 달리면서  힘내라고 웃어 보였다. - P222

그 뒤로 폴크스바겐, 라벨, 뿌조 203, 플로리드가 천천히따라왔다. 처음에는 1단으로, 다음에는 2단으로, 끝없이 2단이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그렇게 많이 클러치를 밟지는 않았다.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은 채로 3단으로 변속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뿌조 404는 왼손을 내밀어 도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겨우 손끝이닿았다. 도핀의 얼굴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담긴 미소를 보고 뿌조 404는 생각했다. - P223

빠리에 도착할 텐데, 그러면 샤워를 하고, 두사람이 함께 자기 집이든 그녀 집이든 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원 없이 샤워하고, 밥 먹고, 마시고, 그런 다음 가구가 있고, 가구가 딸린침실이 있고, 침실에 딸린 욕실에 가서 비누 거품을 묻혀 면도다운면도를 하고, 화장실, 식사, 화장실, 침대 시트. 빠리는 화장실 하나와 침대 시트 두장이었고, 가슴과 종아리를 타고 내려가는 온수였고, 손톱깎이였고, 백포도주였다. 백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키스하고, 라벤더 향과 오드 꼴로뉴 냄새를 맡고, 환한 대낮에 깨끗한 침대 시트 속에서 진정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다시 욕실에서 장난치며 샤워하고, 사랑하고, 샤워하고, 마시고, 이발소에 가고, 욕실에들어가고, 침대 시트 위로 쓰다듬어보고, 침대 시트 속에서 서로 애무하고, 비누 거품과 라벤더와 칫솔질 중간에도 사랑을 하고, 해야할 일과 자식과 일상적인 문제와 장래를 걱정하겠지, 이렇게 멈추지 않고 달린다면, 대열이 유지된다면, 비록 3단을 넣지 못하고 이렇게 2단으로 가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달린다면, 범퍼가 씸까에닿자 뿌조 404는 운전석 깊숙이 등을 기댔다. 속도가 올라간다고 느꼈다.  - P223

이제는 일상적인 만남도, 몇가지 의식도, 타우누스 차에서 모인 비상 지휘부도, 조용한 새벽 도핀의 애무도,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묵주를 돌리는 수녀의 모습도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씸까에 정지등이 들어왔을 때, 뿌조 404는 속도를 줄이면서 터무니없는 희망에 사로잡혔다. 핸드브레이크를 올리자마자 차 문을 열고 앞으로 뛰어갔다. 씸까와 보리외를 제외한 다른 차는 생소했다. (훨씬 뒤에 까라벨이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안면이 전혀 없는 낯선 얼굴들이 놀라고의아한 표정으로 뿌조 404를 쳐다봤다. 경적이 울렸다. 뿌조 404는 차로 돌아가야 했다. 씸까 청년이 호의적인 몸짓을 했다. 마치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힘내라는 뜻으로 빠리 방향을 가리켰다. 차량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P225

이제는 포기하고 주변.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 기계적으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다니던 가죽 점퍼는 군인이 몰고 있는 폴크스바겐에 있을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 읽은 소설책은 타우누스가 가져갔다. 바닥을 드러낸 라벤더병은 수녀들이탄 2HP에 있었다. 그리고 뿌조 404는 그곳에서 오른손으로 가끔곰 인형을 만지고 있었다. 도핀이 마스코트라고 선물한 것이었다.
뿌조 404는 터무니없게도 9시 30분에 음식을 배분하고, 환자를 찾아가보고, 타우누스, 아리안 농부와 함께 상황을 점검하고, 밤이 되면 도핀이 슬그머니 차로 찾아들고, 별이나 구름이나 인생도 찾아들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 그랬는데, 그 모든 게 영원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물이 부족했는데, 아마 군인은 물을 구했을 것이다. 아무튼 포르쉐에게 물을 부탁해야 했다. 항상 부르는 대로 값을 치렀다. 자동차 안테나에서 적십자 깃발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고, 점점 커지는 불빛들을 향해 시속8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도 모르면서,
왜 밤중에 낯선 차들과 함께 달리는지도 모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전방만 주시하면서 그저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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