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사 가자며 나는 앞서가는엄마를 불러 세웠다. 우리 할머니보다 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대로변 인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대추와 깐 마늘, 쪽파 등을 팔고 있었다. 대추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는 대춧값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대추를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 집에 넘쳐 나는 게 대추였는데." - P11

"야, 너 진짜 효심 하나는 인정. 완전 찐사랑이다. 찐!"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겠지?"
"당연하지. 할머니는 원래 그냥 너 쳐다만 봐도 좋아해. 어제도 못 봤냐, 너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얼굴 환해지시는 거. 할머니 이 대추 드시면 자리 털고 일어나실지도 몰라. 이게 보통 대추냐, 네 정성 때문에라도 할머니 오래 사시겠다."
"그건 아닌데."
영석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어? 뭐가?"
"대추나무에 그래서 올라간 건 아닌데."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대추를 기분 좋게,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올가을이 지나기전에 꼭."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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