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신성아 지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로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 왜 아픈 아이는 엄마 탓이라 자책하고 돌봄과 치유도 고스란히 엄마, 여자, 딸에게로 전가되는지...
˝그러니까 진짜 비극은 아이의 병이 아니었다. 팔자 센 엄마의 운명에 원인을 돌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라는 가스라이팅이
바로 비극이다. 이 오래된 관습이 여자의 진짜 사랑을 파괴한다.˝(42쪽)

... ... 엄마들은 아픈 아이를 돌보며 자책하고 남은 가족을 챙기며자학했다. 그나마 아이 컨디션이 좋을때면 시댁과 영상 통화를 했고, 집에 있는 다른 형제자매의 숙제를 챙겼다. 꼭 나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남편과 통화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올 때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한 여자의 사랑은 왜 항상 자기파괴적인가. 국가가 복지로 책임졌어야 할 돌봄이 가족에게 전가되고, 모든 가족구성원이 함께 나눴어야 할 책임은 사랑이라 불리며 여자에게 전가된다. 그렇게 여자의 사랑은 이름을 잃고 주인을 살해한다. 그 과정이 너무 가혹할 때는 운명이라고도 한다. - P42
이것은 운명이기 때문에 왜 우리 아이에게,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겼냐는 원망 어린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신도 야속한 마당에 만족스러운 답을 들려줄 현자가 어디 있겠는가.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해야한다는데, 결국 나보고 현자가 되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진짜 비극은 아이의 병이 아니었다. 팔자 센 엄마의 운명에 원인을돌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라는 가스라이팅이 바로 비극이다. 이 오래된 관습이 여자의 진짜 사랑을 파괴한다. - P42
모성은 당연히 본능이 아니다. 과학은 이미 모성이옥시토신과 프로락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호르몬 반응이라고 해석한 지 오래다. 만약 모성이 본능이라면 이렇게 많은 임신·육아교실이 성행할 이유가 없다. 그저 본능을 따라가면되는데 세금으로 지자체별 육아교실을 운영하고,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딥러닝까지 동원해 분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P54
모성애가 여성의 본능이라는 사이비 과학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의 희생을 연료 삼아 자기 발전을 거듭한 결과 모종의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성 신화는 반드시 헌신적인 돌봄을 전제로 한다. 영웅이 통과의례로 겪는 고난처럼 모성의 서사는 돌봄의 고통 없이 완결될 수 없다. - P55
그러나 돌봄은 모성에서 뿌리내린 것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성은 돌봄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잘 돌본다는 이유만으로 숭고한 모성의 담지자나 영웅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돌봄을 거부한다고 해서 섣부른 판단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 모성 신화는 여성에게 손쉽게 희생을 강요하는 동시에, 각 여성의 삶이 지닌 복잡하고 특별한 경험을 일거에 삭제한다. 저마다 다른 엄마들의 삶을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양분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지독히 안일하고 편협하다. - P55
어떤 엄마든 엄마의 돌봄 노동은 숨을 쉬듯 당연한 것이기에눈에 보이지 않는 일, 그저 마음을 쓰는 일로만 여겨진다. 반면 그노동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가시적이다. 아이가 무심코내뱉은 다소 폭력적인 말, 지나치게 조숙한 말을 듣는 순간모든 화살은 엄마에게 쏟아진다. 누구에게 저런 말을 들었을까, 뭘 보고 배웠길래 저런 말을 할까, 아이에게 매일 유튜브나 보여주니 저렇지, 너도나도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근거 없는 평가를 한마디씩 보탠다.
일하는 엄마들은 더욱 가혹하고 무례한 평가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엄마들은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자신의 일상에서 부지런히 일의 흔적을 지운다. 내 아이에게 발생할지 모를 결손과 결핍이 두려워 보이지 않는 돌봄노동의 강도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자기도 모르게 모성신화를 강화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공ㅈ자가 된다. 불평등한 돌봄노동은 그렇게 모성 신화의 스테로이드제가 되어 온갖 부작용을 남기며 내성을 키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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