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26살의 젊은 아들을 떠나 보낸 어머니와 형을 떠나 보낸 동생... 필라델피아에 있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다가 좀 더 단순하고 조용한 곳,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두 사람의 시선... 전혀 다른 두 그림의 대비... !
같은 예수님의 그림이지만 아들인 작가가 찾은 테마는 ‘경배Adoration‘, 어머니는 ‘통곡Lamentation‘ 혹은 ‘피에타Pieta‘
이러한 대비를 포착해내어 글로 풀어냈는데
두 사람이 느낀 당시의 감정에 이입해서 경건해졌다가 어머니가 느꼈을 감정인 통곡의 느낌에 나도 괜히 복받쳐 올라 눈물이 났다.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리고 고통과 위안 둘 다를 그림을 보며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또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문장에서도 ... 비로소 정화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비록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냉혹하고 바위와 같은 현실일지라도...



내가 찾은 그림은 지금으로부터 7세기 전에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화가가 단순하고 진솔하게 그린 보석과도 같은 패널 그림이었다. 자그마한 포플러나무 패널에 달걀 노른자로 만든 물감인 템페라를 사용한 그림으로, 갓난아기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작은 동굴 입구에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기쁨의 별‘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현자들과 천사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경배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마리아는 주위의 소란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구유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조용한 아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P66

이런 테마의 장면을 ‘경배Adoration‘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그런 순간에 생겨나는 애정 어린 숭배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참 유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말문을 잃고 말랑말랑해진다. 
뒤이어 강렬하고 명백하지만 일상생활의 소란 속에서는 약하게밖에 느껴지지 않던 무엇인가가 우리의 안으로 침투한다. 경배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맥락을 더하는 것은 이 수수께끼같지 않은 수수께끼의 명백한 의미를 흐릴 뿐이다. 
누구나 자고있는 아이나 연인, 떠오르는 태양 혹은 어쩌면 성스러운 유물이나 죽은 지 오래된 이탈리아인이 곱게 그려낸 그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 P66

형이 두 손을 꼭 쥐고 용감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느낌 말고는 다른 감정이 거의 들지 않았다. 기쁨의 별에서 특별한 종류의 선명한 빛이 나오는 듯했다. 옛 거장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함과 같은 것이었다. - P66

그 그림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초기 르네상스 전시실로 갔다. 어머니는 내가 찾은 그림보다 더 인정사정없고, 더 아름답고, 심지어 더 진실되어 보이는 그림 앞에 서 있었다. 14세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Nicolo diPietro Gerini 라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었다. 
특징 없는 금색 배경 앞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 Lamentation‘ 혹은 ‘피에타Pieta‘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 P67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 P67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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