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메일로 이런 글을 주고받는 관계라니...
넘 멋지지 않나!
스토리는 마구 재밌고 흥미롭고 그런건 아닌데
근데 이들의 연애사는 어떻게 전개가 될지 궁금해서 일단 계속 읽어보고 있다.
앨리스와 아일린의 편지글도 좀 궁금하고...

우리의 관계를 성적인 관계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혼란스럽고 다양해 보이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은 점점 더 시시해보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는 개념,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여자를 좋아하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아. 내가 남자와 여자를 둘 다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 과정의 1퍼센트에 불과했을지도, 어쩌면심지어 그만큼도 안 됐는지도 몰라. - P114
내가 남자와 여자를 둘 다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 과정의 1퍼센트에 불과했을지도, 어쩌면심지어 그만큼도 안 됐는지도 몰라. 나는 내가 양성애자라는 걸 알지만, 거기에 정체성으로서 결속감을 느끼지 않아. 내가 다른 양성애자들과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내 성적 정체성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다른 의문들이 더 복잡해 보여. 답을 찾을 수 있는 명백한 방법이 없고, 심지어 내가 답을 찾는다고 해도 그 답을 명확히 설명할 언어조차 전혀 없을 정도로 말이야. 우리가 어떤 종류의 섹스를 즐기는지. 그리고 왜 즐기는지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섹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얼마나 많이, 어떤 맥락에서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런 개별적인 성적 취향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개념에 대한 용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P114
유럽과 미국의 현대 소설의 문제는 그 구조적 완결성을 얻기 위해지구상의 대다수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억압하는 데 의존한다는 점이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빈곤과 고통에 맞선다면, 그러니까 그런 빈곤과 고통이라는사실을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과 나란히 배치한다면, 감각이 부족하거나 그야말로 예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여겨질 거야. 한마디로인류의 대다수가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잔인하게 착취당하는 맥락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그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무슨 일이일어나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니? 그런 세상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지든 계속 함께하는 그게 뭐가 중요할까? - P118
그래서 소설은 세상의 진실을 숨김으로써, 텍스트의 반짝이는 표면 아래 단단히 파묻어버림으로써 작동해. 그러면 우리는 다시 한번 현실의 삶에서 그러는 것처럼 사람들이 헤어지는지, 아니면 계속 함께 하는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돼. 우리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세상만사를, 즉 모든 것을 싹 다 잊어버리는 데 성공한다는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말이야.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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