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광희가 나오지 않았다. 얼마 전에 명자가 나한테 일러바친 말도 있고 하여 걱정이 된다. 명자의 말인즉 술이 취한 민우 씨가 밤늦게 들르면은 광희가 그를 따라나간다는 것이다. 민우 씨가 나한테 대한 반발심이나 혹은 여자에 대한 학대의식으로 광희를 유혹하고, 광희 역시 자포자기의 기분으로 그한테 몸을 내맡긴다면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없는 선량이라는 것, 그리고 순수하다는 것, 그런것은 때에 따라서 방종과 무책임에 흐르기 쉽고, 죄를 저지르기 쉽다. 죄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을 수 있는 불장난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 자신의 마음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 P111
어젯밤에도 우리는 밤거리를 헤매어 다녔다. 상현 씨의 따뜻한 손길이 지금도 머리카락에서 느껴진다. 집에 돌아가서도 나는 밤늦게까지 그를 생각했다. 몹시 피곤하다. 잠을 자지 못한 때문이다. 몽롱해지려는 시야를 넓혀본다. 마돈나는 여전히 고물상 같은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봄은 바로 눈앞에와 있는 것 같은데 그을릴 대로 그을린 커튼이 넝마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봄이 빨리 와서 난로라도 치워버렸음 속이 시원하겠다. - P110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 최 강사가 김 선생하고 이마를 맞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 강사는 또 무슨 이용 가치를 김선생한테서 발견했는지, 음험한 표정이다. 그러나 김 선생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최 강사는 일전에 삼선교에서 그를 무시하고 합승에서 내려버린 나한테 상당히 깊은 앙심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 P111
그 후부터 그는 사사건건을 묘하게 구부려서 남의마음을 간질간질 긁는다. 그리고 물귀신처럼 기분 나쁘게 말을 감기도 한다. 영 귀찮을 지경이다. 차라리 차를 팔지 않아도 좋으니 그치들이 나타나지 말았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끈질기게 나타난다. 나타나는 이상 손님 대접을 안할 수도 없다. 마돈나의 공기를 험악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는 이상 아니꼽고 구역질 나는 일이라도 할 수 없이 해야 한다. 그러나 최 강사에 대한 나의 그러한 대접을 그자는 일종의 교태쯤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 엄밀히 말하면 내가 - 그한테 아침을 하고 비굴하게라도 굴었던 것처럼 거만스럽게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뭐 천한 것들이! 하는 식으로 냉소를 흘린다. 피차가 서로 경멸하기는 일반이다. 다만 나는 그에 대한 경멸의 기색을 고양이의 발톱처럼 감추고 있고,그는 몸짓과 말투로써 충분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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