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著
요 근래 들어 '글쓰기 싫어'병이 도져서 책을 읽기만 하고 도통 리뷰도 페이퍼도 쓰지 않고 방치 상태다. 열심히 읽긴 하는데 도서관 반납에 쫓겨 반납해버리고 나니 리뷰를 쓰기는 더 힘들어진다. 이러다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오겠지만 다시 책을 빌려와서 리뷰를 쓰긴 싫잖아...ㅠ.ㅠ
<빌러비드>는 반납하기 전에 뭐라도 남겨보고 싶은 맘이 들었지만 하루 종일 뭉기적거렸다.
망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는데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읽은 책들은 기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쓴다. 줄거리만이라도 기억할 단서를 남겨보자 싶어서... 세서의 절규만이라도...
내일이라도 리뷰를 남기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으면 좋겠다.
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 ㅡ 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ㅡ 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268쪽)
...간단한 것이었다.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학교 선생의 모자를 알아보았을 때, 그녀는 날개가 파닥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벌세들이 바늘처럼 뾰족한 부리로 머릿수건을 뚫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를 콕콕 쪼아대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혹시 생각이라는 걸 했다면, '안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라는 절규뿐이었다. 간단했다. 그녀는 무작정 달려갔다. 자신이 만든 생명들, 귀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의 일부들을 빠짐없이 끌어모아서, 이 세상의 장막 너머로 멀리, 아무도 그들을 해칠 수 없는 저편으로 들고, 밀고, 끌고 갔던 것이다. 저 너머로, 이곳, 바깥,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벌새의 날개는 계속 파닥거렸다. (269쪽)
덴버는 엄마와 빌러비드의 관계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세서는 톱질에 대한 보상을 하려 애썼고, 빌러비드는 그 보상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도 끝도 없었고, 한없이 작아지는 엄마를 보면 덴버는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덴버가 제일 처음 두려워했던 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러비드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빌러비드를 깨우쳐주기 전에 떠날까봐,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조그만 턱 아래 대고 톱날을 켜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손안에서 아기의 피가 기름처럼 펑펑 솟구치는 게, 머리가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얼굴을 붙잡고 있는 심정이, 생명의 힘으로 달콤하고 포동포동한 그 사랑스러운 아기의 몸을 관통하는 죽음의 경련을 어떻게든 흡수하려고 꼭 껴안는 심정이 어땠는지를 이해시키기 전에 빌러비드가 떠날까봐, 그러나 그보다도 베이비 석스가 죽음에 이른 이유와, 엘라가 아는 일과, 스템프가 본 것과, 폴 디를 공포에 떨게 한 일은 훨씬, 훨씬 더 끔찍한 일이었다는 걸 그녀가 개닫기도 전에 떠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408쪽)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렵혔다, 완전히 더렵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그녀와 다른 이들은 그 일을 겪고도 살아 남았지만, 자식만큼은 절대 그런 일을 겪게 할 수 없었다. 자식들은 그녀의 보배였다.
백인들이 그녀 자신은 더렵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의 보배만큼은, 마법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보배만큼은, 그녀의 순결한 분신만큼은 그렇게 되게 할 수 없었다. 머리도 발도 없이 표시만 남은 채 몸통만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 내 남편인지 폴 에이인지 고민하는, 그런 꿈으로조차 꿀 수 없는 꿈들은 더이상 안된다. 애국자들이 흑인 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차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하는 꿈들은 더이상 꿀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409쪽)
그리고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딸의 특징을 공책의 동물적인 특징 목록에 적을 수는 없었다. 안 될 말이지, 오, 안 되고말고. 베이비 석스라면 걱정하면서도 체념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서는 필사적으로 거부했었고, 지금도 거부했다. (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