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르침 속에는 고대의 지혜도 있지만 억압적 이데올로기도 포함되어 있다. 오디세이아』1권에서 텔레마코스가 어머니인 페넬로페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께서는 집 안으로 드시어 베틀이든 물레든 어머니 자신의 일을 돌보시고 하녀들에게도 가서 일하도록 시키세요. 연설은 남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염려할 일이에요. 이 집에서는 제가 주인이니까요." 자신을 남자로 느끼기 시작한 무뚝뚝한 아들은 어머니에게 물레를 돌리라며 집안의 지배권을 차지하려 한다. - P125
시인은 율리시스의 젊은 아들의 입을 통해 남성의 지배권을 승인한다. 그리스인에게 말은 남성의 소유, 남성의 특권이었다. 일리아스』에서도 제우스가 어느 연회에서 아내 헤라가 자신의 의도를 알아내려 하자 "입 다무시오."라는 말로 공개적으로 힐책한다. 이런 표현과 행위를 통해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가정에서 처신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모델을 제공한다. - P125
나아가 일리아스』는 말의 문제와 관련된 계급적 차별을 보여준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유일한 평민출신 병사이자 전쟁에 나간 그리스인 중 가장 못생겼다고 묘사된 테르시테스가 장군들의 회의에 끼어들려고 하자 율리시스가 그를 홀로 내리치며 "얌전히 앉아서 너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의 말이나 듣도록 해라."라고 호통친다. 그런데도떠들어대기 좋아하는 테르시테스는 아가멤논의 욕심을 비난한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무엇이 모자라서 불만이시오? 그대의 막사들은 청동으로 가득 차 있고, 그대의 막사에는 우리 아카이아인들이 도시를 함락할 적마다 고르고 골라 맨 먼저 그대에게 바친 여인들이 많지 않소....... 하나 아카이아인들의 아들들을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지휘자 된 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이 말에 군인들이 박수치고 환호하고 크게 웃자 율리시스가 그를 심하게 꾸짖는다. - P126
"홀로 그의 등과 어깨를 치자 그는 몸을 웅크리며 눈물을 뚝뚝흘렸고 그의 등에는 황금 홀에 맞아 매 자국이 벌겋게 솟아올랐다. 그는 겁에 질려 자리에 앉았고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당황한 얼굴로 눈물을 닦았다." - P126
우리는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부장적인 귀족정치가 그작품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호메로스는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시인이 전통의 파수꾼인 시대에 자유롭고 파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순종적인 사람들,반항적인 사람들, 순박한 사람들,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 침묵을 지키는 여성들, 매 맞는 사람들, 못생긴 테르시테스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가가 나타나려면, 문자와 책이 발명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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