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속의 영원> 1. 미래를 상상한 그리스 中~
메소포타미아,시리아,소아시아,페르시아같은 근동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도 도둑이나 책을 훼손하는 자를 저주하는 말이 있다.

˝태블릿을 훔치거나 우격다짐으로 가져가거나 노예를 시켜 도둑질 하는 자는 샤마쉬가 눈을 뽑고 나부와 니사바가 귀를 멀게 할 것이며 나부가 육신을 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태블릿을 훼손하거나 물에 넣거나 볼 수 없게 지우는 자는 천상과 지상의 신들과 여신들의 무자비한 저주를 받을 것이며 이름과 가문이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고 육신은 개의 먹이가 될 것이다.˝

이 소름 끼치는 경고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책이 상업적으로 유통되지 않았기에 책을 얻으려면 직접 사본을 만들어야 했다. 전문적인 필사가가 존재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적을 괴멸하고 전쟁의 전리품으로 책을 취해야 했다. (83쪽)

*태블릿: 글씨를 새겨넣기 위한 단단하고 평평한 판떼기를 의미한다. 로마시대 필기구인
타불라(Tabula, 판)와 스틸루스(Stilus, 첨필) 세트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것이 현대에 와서 태블릿과 스타일러스 펜이 되었다.(네이버 검색)


독서가 늘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글이 생겨난 이후부터 중세 시대까지 독서는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큰 소리로 읽는 행위였다. 작가는 글을 쓰며 문장을 읽음으로써 음악성을 유지했다. 

책은 지금처럼 머릿속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입술을 떼며 큰 소리로 울리는 멜로디였다. 독자는 성대를 울리는 해석자였다. 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주 기본적인 악보로 간주됐다. 그래서 글자는 연이어서 등장하며, 구분이나 마침표가 없었다. (글자를 이해하려면 발음을 해야 했다.) 

책을 읽을 때는 증인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독서는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도서관의 주랑 현관이 조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늘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고대의 독자들은 텍스트의 환영이나 사상을 마음대로 읽거나, 원할 때면 아무 때고 사색을 위해 멈추거나, 취사 선별하거나,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를 지금만큼 누리지 못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개인적 자유, 즉 독립적 사유에 대한 정복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취된 것이다. - P72

아마도 그렇기에 우리처럼 읽게 된 초기 사람들, 다시 말해 침묵 속에서 작가와 말 없는 대화를 하게 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주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고백록]에 기록했다.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주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는 그의 눈이 페이지를 훑어가며 글을 이해해갔다. 하지만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있으면서도 실은 자기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주교는다른 세계로 달아나 있으며 움직이지도 않은 채 찾을 수 없는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당황스러웠으며 동시에 그를매료시켰다. - P73

따라서 당신은 아주 특별한 독자로서 혁신자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신과 나의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 P73

5000년 전에 발명된 책이 사실상 현재의 책의 선조다. 점토로 된 태블릿 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강 연안에는 파피루스가 없었으며 돌과 나무와 가죽에 비해 점토는 풍부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흙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약 20센티미터 길이의 사각형 점토 반죽에 글을 썼는데 오늘날의 우리가 쓰는 태블릿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점토에 조각하듯이 글을 쓰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물은 점토 위에 쓰인 글자를 지워버렸지만 불은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와 같은 효과를 낳으며 태블릿을 오래 유지해주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대부분의 태블릿들이 화재의 불길 덕에 보존된 것들이다.
그렇게 책은 생존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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