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이사벨 아옌데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여자들에게>이사벨 할머니와 수다를 ......

이사벨 아옌데의 에세이 <사랑하는 여자들에게>를 읽는 동안 정말 이사벨 할머니와 수다를 떨고 온 듯한 경험을 했다.

그 수다를 언제까지라도 ... 그래서 다시 또 만나서(물론 직접 만난다 해도 대화가 안될테니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수다를 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도 정말 이 할머니의 수다를 듣고, 박수 치고 맞아요 맞아요 그러니까요 하면서 공감하고 있는 기분이 수시로 들었지만 -물론 더 할 수 없이 멋진 할머니인건 말할 것도 없고 - 그 수다가 끝나지 않고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 가까이 사는 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이지만 나는 그의 소설(영혼의 집, 운명의 딸)을 접한 것 뿐이어서 내밀한 속내는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작품을 대하면서 노년의 이사벨의 속내를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좀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줄 수 있는 작가가 같은 여자라서, 그리고 작품의 엄청난 성공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서, 또 그리고 이런 뜻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는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내가 왜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건지는...  읽어보면 알게 될 거라고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다~~^^



칠레에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볼리비아로 망명을 하고 다시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제는 미국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녀는 영원히 남미 칠레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자신의 조국은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칠레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노년에 만난 현재의 남편과 지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행동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그의 나이 78세에 쓴 에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토대로 자신이 살아왔고 이제 자신의 딸과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 사랑하는 여자들이 살아갈 세상은 가부장제라는 제도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기를 염원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들이 힘을 모아 연대하기를 바란다. 여성들이 연대하는 힘은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남성들의 가부장제가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여성들의 힘으로 변화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멋진 이사벨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글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 중에 내가 몰랐던 부분은 딸 파울라가 유전성 혈액 질환을 앓다가 이사벨의 나이 50 무렵에 엄마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파울라>라는 작품을 발표하였고(우리나라엔 출간되지 않았나봐요..ㅠ.ㅠ 엄청난 성공이었대서 너무 궁금함), 그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재단(www.isabelallende.org)을 설립하고 전 세계의 여성들을 돕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페메니스트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또는 겪은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데, 여성들이 연대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아는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는 것은 가부장제를 심지어 돕는 여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무거운 내용들이 많지만 그 분위기를 바꿔가면서 무겁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더 좋은 이 기분을 다른 모든 여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많은 여자들이 다 읽었으면 좋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이 책을 구입해야겠다.  내 맘에 들어온 문장들을 남겨본다.


                 





*** 문장들


   일반적으로 언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에는 남녀의 구분이 유용하며, 젠더를 구분해야 통제가 훨씬 쉬워진다. 우리는 젠더와 인종, 나이 등등의 구분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왔지만 젊은 세대 다수는 이러한 구분에 반기를 든다. (86쪽)



   내 딸 파울라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우리 곁에 잇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칠십 줄에 접어든 지금 죽음은 어느덧 나의 친구가 되었다. 죽음은 낫을 든 썩은 냄새를 풍기는 해골이 아니다. 죽음은 성숙하고 우아하며 치자꽃 향기를 풍기는 상냥한 여인이다. 전에는 우리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더니 얼마 전에는 우리 이웃집에 와 있다가 지금은 우리집 마당에서 참을성 있게 대기하고 있다. 가끔 그녀 앞을 지나칠 때면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누리라고 일깨워준다. (146쪽)



   남성은 여성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법과 종교, 관습의 힘을 빌어 수 세기동안 여성들의 지적 계발과 예술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는 온갖 제한을 가해왔다. 한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너무 많이 안다는 이유로,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산 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도서관에도 갈 수 없었고,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런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성적인 모습은 여성을 문맹화하여 고분고분 복종하게 만들고, 쓸데없이 질문하거나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두드러지거나 리더의 위치에 오르려고 하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겪은 것과 같은 공격을 당하게 된다. (162쪽) (그러게나 말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안이 미치광이 백인 트럼프였다니 믿어지십니꽈!!!)



   미국의 연쇄살인범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백인에 공통적으로 여성혐오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여성 혐오는 가정 폭력, 여성에 대한 위협과 폭행의 이력을 보면 확인된다. 이런 사이코패스들 상당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성의 거절과 무관심, 조롱을 견디지 못한다. 즉, 여성이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들을 비웃을까봐 두려워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들을 죽일까봐 두려워한다."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다.(163쪽)



   여성의 학대는 곧 여성의 평가 절하와 맥을 같이한다. 페미니즘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인 개념이다. 수 세기 동안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165쪽)



   이제 평화를 이야기해 보자. 전쟁은 마초이즘 표출의 극한이다. 모든 전쟁에서 희생되는 대부분의 희생자는 군인이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이다. 14세에서 44세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원인은 바로 폭력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암, 말라리아, 사고사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인신매매 희생자의 70퍼센트도 여성과 아이들이다. 한 마디로, 선전포고만 없었지 여성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니 우리 여성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그 무엇보다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74쪽) (으... 마초이즘 너무 싫어...ㅠ.ㅠ)



   경제적 자립 없이는 페미니즘도 없다. ...2015년에 전 세계 문맹자의 3분의 2는 여성인 것으로 추산되었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동의 대다수는 여자 어린이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에 비해 낮은 급여를 받고 있으며, 교사나 간병인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던 직군은 급여가 낮고, 가사 노동은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건 물론 대가도 전혀 지급받지 못한다. 요즘같이 여성도 밖에서 일을 하는 시대에는 이런 사실에 훨씬 더 화가 치민다. 어차피 외벌이로서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남자가 별로 많지 않아서 바깥일을 같이 하는데,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고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건 다 여자 몫이기 때문이다. 관습과 법이 바뀌어야 한다. ... ...누군가에 의존하는 삶은 어린시절에도 지금 느끼는 것만큼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 스스로 내 밥벌이를 하고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능하면 엄마도 부양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늘 말했다. 돈을 내는 사람이 명령도 내리는 것이라고.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내 초기 페미니즘 사상에 도입한 최초의 공리였다. (180 ~ 183쪽)



   나는 내 소설에 등장시킬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여주인공을 굳이 창조해낼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이 늘 그런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사지에서 도망쳐 나와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심지어 자식까지 잃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단지 생존자일 뿐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몸에 난 흉터와 영혼에 생긴 상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 자신이 회복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희생자로 취급되기를 거부한다. (185쪽)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여성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빈곤 지역의 경우, 어머니들은 소득의 전부를 가족을 위해 쓰는 반면, 아버지들은 소득의 3분의 1만 가족에게 쓴다. 다시 말해, 어머니들은 돈을 버는 대로 가족의 식비와 의료비, 자녀들 학비를 충당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재미를 보느라 탕진하는 것일 수도 있고, 휴대폰이나 자전거 같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데 쓸 수도 있겠다. (191쪽)


 

  1960년대에 피임약을 비롯한 다양한 피임 기구들이 대중화되면서 여성 해방의 범주도 더욱 확대되었다. 마침내 여성도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 없이 온전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즈음 칠레 종교계와 마초이즘의 반발이 얼마나 강력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 지금까지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전쟁, 근본주의, 독재, 경제 위기, 각종 재난에 이르는 온갖 구실로 우리 여성의 인권은 짓밟히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인권이 있다면 말이다. 미국에서도, 그것도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린 이 시대에, 여전히 낙태권뿐만 아니라 여성의 피임 기구 사용 문제는 뜨거운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남성의 정관 수술이나 콘돔 사용을 문제 삼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198 ~ 199쪽) (내말이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났는데... 내 몸에 생긴 일인데 왜 결정을 남자들이 해주는 거죠? 여성들이 그걸 원한건 아닌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남성의 가치 그리고 단점만 부각시키고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짓눌러온, 천 년을 이어온 가부장제 문화를 종식시켜야 한다. 종교와 법률로부너 학문과 관습에 이르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이 문화를 지탱해온 근간을 산산이 부숴버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분노하자. 여성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순종의 미덕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며, 남성에게만 유익할 뿐 우리 여성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237쪽) (맞아요~~~ 순종, 복종 이런 단어는 종교인들이나 사용하는 걸로!!!)



   이미 40여 년 전에 저명한 활동가이자 뉴욕 주 하원의원이었던 벨라 앱저그는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에 담아낸 바 있다. "21세기에는 권력이 여성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대신, 여성이 권력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다. (238쪽)



   나는 딸(파울라)에게 아직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체념한 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그랬듯이 그 여성들도 원래 세상이 그런 거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페미니즠'이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좋은 이름을 찾아보렴.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정말 중요한 건 너 자신과 이 세상의 행동을 필요로 하는 숱한 자매들을 위해 일하는 거야." 파울라는 별 다른 대답 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40쪽)



   이제 잠시 숙고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며, 의식 있는 남녀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며, 옛이야기 속 바그다드의 칼리프가 도둑에게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단순히 오감을 만족시키는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맑은 생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말이다. 우리는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는 평화로운 지구를 원한다. 우리는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 다른 종과 자연에 대한 존중에 입각한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문명을 원한다. 우리는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 우리를 갈라 놓는 각종 구분에서 비롯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포괄적이고 평등한 문명을 원한다. 우리는 평화와 공감, 품위, 진리, 연민이 충만한 친근한 세상을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우리 착한 마녀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여성이 함께 완성해낼 수 있는 계획이다. (249 ~ 25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