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 사람들 보면 제일 부럽다. 난 혼밥이 정말 힘든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혼자 먹자고 정성스레 상을 차리는 것이 너무 성가시고 귀찮기도 하다. 가족과 아침, 저녁을 같이 하니까, 그리고 그 두 끼를 내 손으로 차려야 하니까 혼자 먹는 점심은 간단히... 이렇게 되는 거다.
거기다 위胃가 약해서 늘 심하거나 덜한 소화 불량 상태에 있는지라 내가 먹는 음식의 중요한 선택 기준은 소화가 잘 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달라지고, 거의 소화에 무리가 없는 음식으로 최소화해서 먹는 편인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건지 갑자기 우리 집에 라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아들 때문에라도 라면은 늘 구비되어 있다). 그것도 짜장 라면이! 소화에는 쥐약이지만 오랜만에 그 짜장 라면이 너무 땡겨서 인덕션을 고출력으로 물을 끓이고 면을 넣어 5분을 끓이고 물을 약간 넉넉하게 남긴 후 짜장 스프와 첨부된 기름을 넣고 복작복작... 마지막에 매운 고춧가루 좀 뿌리고 다시 복작복작 후 파스타 접시에 부어 맛있게 냠냠~~~^^(역시 소화가 더딘 게 느껴져서 소화제 먹어주고)
오늘 읽으려고 선택한 책은 인문 지리학자인 이영민 교수의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이다. 책 표지의 부제목은 "야만과 지상낙원이라는 편견에 갇힌 열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열대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야자 나무, 그 아래 백사장엔 열대의 낭만을 즐기러 온 형형색색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 바닷 가재를 비롯한 해산물과 열대 과일이 풍성한 식탁, 그리고 아름답고 강렬한 원색의 프린팅 원피스를 입은 태양에 검게 그을린 피부의 여인들.... 등등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제대로 된 지식을 습득하기도 전에 열대의 식민 지배를 동경한 화가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열대의 낙원을 그린 그림들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가끔 티비에서 방송하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열대 우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여주는 맹그로브 나무, 그도 아니면 세렝게티 초원의 야생 동물들의 세계와 바오밥 나무, 그리고 아마존 열대 우림이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거나 백화 현상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산호초 숲. . .내가 아는 열대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리고 여름을 싫어하는 나에겐 너무도 먼 나라 이야기였을 뿐이고 내가 그곳들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데서 위안을 느끼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난 강렬한 태양과 찌는 듯한 더위, 벌레, 파충류, 악어, 야생 동물, 쏟아붓듯 내리는 열대성 폭우 등.... 윽 이런 건 너무 싫어, 내 취향 아니야 절대 싫어 이러면서 여행을 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이 책이 열대지방에 대하여 알고자 찾아본 첫 책인 셈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열대 지방에 나타나는 3가지 기후인 열대우림 기후, 열대 사바나 기후, 열대 몬순 기후의 차이점에 대하여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고, 정말로 해가 중천에서 뜨는, 즉 해가 지표면에 수직으로 뜨는 경우가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이때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른바 '라하이나 눈 lahaina noon'현상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 그리고 열대 지역이란 대체로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회귀선(위도 23.5도)까지, 혹은 조금 더 넓게 위도 30도 정도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둥근 지구의 두툼하게 나온 지구의 허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적도는 태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열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고 그러니 기온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한반도는 북위 33 ~42도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태양이 북회귀선에 위치할 때 태양이 가장 가까워지고 그때가 바로 24 절기의 하나인 것이다다. 이 정도는 알았던건데도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왠지 새삼스럽다^^
아무튼 오늘은 열대 지역의 기후에 대한 부분을 다 읽고 2장 열대의 자연에 대해 읽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열대우림 기후를 가진 지역이 보르네오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르네오 섬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세 개 국가가 있는데, 열대 우림의 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저 멀리 아마존이나 콩고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니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5 시간 정도만 비행하면 열대 우림을 구경할 수 있고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를 둘러볼 수도 있다. 또한, 쿠칭에서는 오랑우탄(세계적으로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에만 서식하는 유인원이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안가의 열대 우림 지역은 이미 개간이 되어 도시가 들어서고 강줄기를 따라 벌목과 농지가 만들어져서 열대 우림은 흉측한 모양으로 계속 뜯겨나가고 있는 실정이란다. 숲이 뜯겨나가고 남은 자리는 사진으로만 봐도 처참하기 이를데 없다. 오랑우탄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은 열대 우림의 파괴가 동물종의 멸종 위기를 불러오는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열대 우림의 파괴는 오랑우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개간만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열대 우림을 불태우며 나온 유기물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거기에 다시 농사를 짓는 방식은 열대 우림 사람들의 전통적인 경작 방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열대 우림만이 키워낼 수 있는 특수한 작물의 전 세계적인 수요가 열대의 숲을 전례 없는 속도로 제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대를 여행하다 보면 열대 우림의 숲을 태우면서 나는 뿌연 연기를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숲은 더욱 심각하다. 현지어로 '아삽'이라 부르는 이 연무는 건기가 끝나갈 무렵인 8 ~ 10월 경에 가장 심해지는데 멀리 바다 건너 대륙쪽 동남아시아까지 퍼져나가고 우리가 휴양지로 선호하는 '발리'까지 날아가 숨쉬기가 곤란해지고 천식에 눈병까지 날 지경이란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멀리 태국이나 필리핀까지 연기가 날아가 인도네시아 정부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째 우리가 봄만 되면 황사 때문에 중국을 욕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여기서도 벌어지고 있는 거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이렇듯 열대 우림을 계속 불태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기름 야자(우리가 팜유라고 부르는) 총 생산량의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인데 이 기름야자 농장을 만들기 위해 열대의 숲을 계속 불 태우고 있는 것이다.
"기름야자에서 추출하는 팜유는 가정집의 식용유로 직접 사용되기도 하며, 라면과 과자 등 튀김류의 가공 식품에도 빠짐없이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세제와 샴푸 등에도 필수로 들어가는 원료다. 최근에는 바이오디젤 연료로까지 개발되어 미래 에너지원으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다." (104 ~105쪽)
*'팜유'에 대하여(네이버 지식검색)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6478120&categoryId=32109
아... 백만년만에 라면을 점심으로 먹은 날 하필 이런...
다용도실에 있는 라면을 종류별로 다 뒤집어봤다. 삼양라면, 짜왕, 감자라면(애터미), 배홍동, 라면사리, 컵라면은 신라면이 있었다. 원재료명은 팜유(말레이시아산)로 6가지의 라면이 동일했다. 과자류는 크라운산도 한 가지가 있어서 그것도 확인해 보니 팜유(말레이시아산)였다. 왜 하나같이 말레이시아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이나 과자류 등의 튀김 가공 식품에 사용되는 팜유가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은 기회로 다시 한 번 찬찬히 찾아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에 어쨌든 의미를 두고 싶다. 덕분에 다용도실에 구비된 식재료들과 과자류를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외였던 점은 남편이 좋아하는 프림 커피의 재료 중 하나인 동서 프리마에도 팜유가 들어있었다는 거다.
다시.... 이 기회에 기왕 시작한 거니까 싶어 우리 집 가공 식품의 원재료명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았다. 냉장, 냉동실 재료들도 살펴보고... 팜유를 사용하지 않은 가공 식품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 안에 있는 세제류도 다 보고(성분명이 어찌나 깨알같은지... 안경을 썼는데도 알아먹기 힘드네!) 화장품도 일일이 뒤집어봤는데 내 눈에만 안보이는건 아니겠지??? 원재료명을 이렇게 열심히 읽은 건 처음이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집 식재료나 식품 중엔 원재료명에 '팜유'라고 쓰인 제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라면과 과자 한 가지, 동서 프리마가 다였다. 소화가 잘 안되니까 의식적으로 튀긴 음식이나 과자류는 늘 피해왔기 때문에 많이 걸러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팜유가 들어간 식품을 전혀 안 먹을 거 같지는 않다. 전혀 안 먹겠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나도 일정 부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 파괴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의 의식이 제고되어야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싶은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문제점을 알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늘 너무 어렵다. 이게 나의 한계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 그것이 참 미안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지구에 내가 태어남으로해서 끼치는 나쁜 영향이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