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는 해설자처럼 독자에게 자세한 목록을 펼치기까지하죠. 머리말에서요? 아뇨,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진행되면서요. 그 점이 츠바이크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저는 느꼈어요. 츠바이크는 목록의 장인이죠.
재밌네요. 예를 들어보세요. 어제의 세계에서는, 인류학적 탐방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는데, 그걸 예로 삼을 수 있겠군요. 빈의 커피숍들에 대해서 한 장을 다 할애하죠. 츠바이크는 커피숍이 커피 한 잔 값으로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의 교육 기관‘이자 ‘정치 클럽‘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커피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나열합니다. 대화, 글쓰기, 카드놀이, 편지 받기, 커피숍에 있는 신문과 정기 간행물 읽기.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죠. "빈에 있는 좋은 커피숍에는 빈에서 나오는 신문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그뿐아니라 독일 제국 전체를 비롯해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신문들도 있다. 그리고 문예지와 예술 잡지도 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빈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지적인 경쟁들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가장 저평가되었거나 묻힌 철학자로 누구를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맞아요. 츠바이크는 분류 학자 같아요. - P186
네, 저는 감정의 혼란에서 츠바이크의 화자가 학식이 많고 매력적인 나이 든 남자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에 정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구조도 이렇게 스토리가 전달되는것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영화를 못 봤더라도 저는 [감정의 혼란]의 이야기에 빨려들었을 겁니다. - P191
더 젊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이 든 사람.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죠. "이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종일 기다렸다. 오후가 되자, 나의 참을성 없는 정신에 무겁고 불쾌한 초조가 따갑게 내려앉았다. 저녁이 올 때까지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그의 서재로 곧장 올라갔다.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책상에 앉아 있고, 그는 방을 계속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리듬을 찾았다. 즉, 목소리를 높여서 전주를 시작했다. 이 놀라운 사람은 감정의 음악성에서 모든 것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생한 음표가 있어야만 생각을 끄집어냈다. 대개 그것은 이미지, 강렬한 은유, 극적인 장면으로 시각을 확장한 3차원의 배경으로, 그는 빠르게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떠올렸다. 이 즉흥 이야기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창의력의 결정체라 할 만한 것이 흔들리며 빛나곤 했다."
그 부분은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을 묘사한 거죠. 하지만 사실, 교수가 하고 있는 것은, 자기 연구를 리프연주하고 자기 생각과 개념을 소설 속 화자에게 전하는 것뿐이죠. 그렇죠? - P191
늙은 제로가 작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죠. 연극에서 배우의 얼굴을 비추는 조명이 바뀌는 것처럼, 제로의 얼굴에 비치는 조명도 달라져요. 츠바이크의 글 전체에는 그런 분위기가있어요. 젊음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분위기요. 피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육체의 젊음을 이상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죠. 젊은 사회라는 개념도 이상화합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회, 혹은 어떤 면에서는, 시작될 수 있는 사회죠. 새로 시작해서 자신을 바꾸는 것. 그게 츠바이크의 글에서 중요하고, 츠바이크 자신에게도 중요했어요. - P191
츠바이크가 브라질에 관한 책을 썼는데 거기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제목이 [미래의 나라]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열정과 가능성과 순수를 간직한 젊은 사회에 관한 책 같아요.
츠바이크가 묘사하는 1920년대 유럽 모습 중에서 시사하는 바가 가장 큰 것은, 당시 유럽에 여권이 없었다는 점이죠. 여권 발부가 없었어요. 필요가 없었죠. 츠바이크에게 여권은 최악을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자신의 정체를 증명해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야 했죠. ‘너는 선을 넘어갈 수 없어. 우리가통제해‘ 같은 말을 하는 권력이 나타난 거죠. 그게 끝이 아니었죠.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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