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단편은 [바다눈]이다.
지하도시에서 살게 된 지구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르코, 은희, 의주, 톨가, 유오, 소마, 커커스, ...
그런데 읽다보니 언뜻 어색한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짊어주었다(38쪽)*
‘짊어지다‘가 아니고 ‘짊어주다‘가 원형일텐데 검색해봐도 안나온다.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이해가 될듯도 한데
어떤 낱말을 넣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연히 상상하려니 떠오르질 않는다.

*바다눈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층짜리 계단아래였다. 그날은 마르코가 제작실에서 경호를 서는 첫 근무 날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깃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제작실 입구에 덩그러니 서있던 마르코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곳에 설치된 조형처럼 보였다. 온통 잿빛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에 마르코가 입고 있는 정장과 셔츠도 어두컴컴한 색이라, 얼핏보면 머리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긴장 완화에 좋다며 치유키가 선물한 약도 챙겨 먹었지만, 아마 플라세보 효과를 노린 포도당 알약이었을 것이다. 품이 큰 정장 재킷을 걸치고 서 있던 마르코는 어느 면으로 보나 제작실을 지킬 만한 모양새가 덜 만들어진, 소년이었다. - P15
톨가의 표정은 황홀한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런 톨가의 얼굴이 마르코에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톨가는 뭐랄까, 마르코가 갈 수 없는 차원 속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차원은 톨가에게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짊어주었다*.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던 의주의 말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수레는 레일에서 이탈하거나 뒤집혀. 책임감 없는 행복은 위험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러운 거야‘ 의주는 종종 이런 식으로, 행복 없는 책임감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마르코는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톨가의 표정은 행복과 책임감이 적절히 섞인 수레처럼 만족스러워 보였다. - P38
"너도 지금 나랑 같은 상태인 거지?" 마르코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은희를 대하는 마음이, 톨가가 그 형을 대하는 마음과 같은가. 이 질문이 계속 마르코를 파고들었다. 마르코는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톨가가 그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마르코의 마음은 마르코조차 처음 겪는 것이었다. 마르코가 대답을 망설이자, 톨가는 유능한 심리 상담가처럼 부담을 내려놓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마르코가 떠올리고 있는 대상의 어떤 점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지, 그것에 집중하라고도 덧붙였다. - P39
"목소리가 아름다워." 톨가의 조언을 듣자 말을 내뱉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마르코는 제작실에서 처음 은희의 노랫소리를 들었던 순간부터 함께 점심을 먹었던 것, 그리고 어제 잠들기 전까지 은희를, 그리고 은희의 노랫소리를 떠올렸던 것을 숨김없이 말했다. 은희의 이야기를 톨가에게 하는 동안 마르코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후련함이었고 하나는 단단해짐이었다. 은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있던 은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은희가 들어찼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들며 단단한 광물처럼 빛났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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