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차에 오른다.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흑으로 아니 어쩌면 빛으로.

우리에겐 아직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 뭐가 남았는지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갑자기 루크는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게 없었다.
우리에겐 아직도 서로가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내 말투는, 내 귀에조차 그렇게 냉담하게 들렸을까?
그때 루크는 내게 키스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이상, 이제 만사가 괜찮아질 거라는 것처럼. 하지만 뭔가가 달라졌다. 어떤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쪼그라든 기분이 들었고, 그가 팔을 내게 두르고 안아올렸을 때는 인형처럼 작아진 듯이 느껴졌다. 사랑이 나만 버려두고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 P313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 버린 일이다. - P313
나는 내 자리에서 기도를 한다. 창가에 앉아 커튼을 치고 텅 빈 정원을 바라보면서, 눈도 감지 않는다. 바깥이든 내 머릿속이든,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빛으로 충만하던가. 하느님, 당신은 천국에 계시죠. 천국은 제 마음속에 있고요. 당신의 이름, 진짜 이름을 말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도 충분히 좋은 이름이지요. ‘당신‘께서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일이든, 제발 제가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비록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당신께서 바라는 일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P335
이제 용서를 말할 차례가 되었군요. 지금 당장 저를 용서해 주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다른 이들이 지금 무사하다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지나치게 고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들이 죽어야만 한다면, 빨리 죽여주세요. 그들에게 천국을 주실 수도 있으시죠. 그래서 우린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런 짓을 한 인간이 누군지 몰라도, 그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몰라도, 무조건 용서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노력은 해보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 P336
우리는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이 주었소. 사령관이 말했다. 전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생각해 보시오. 독신 전용 술집이니, 품위 없는 고등학교 미팅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육체 시장이라고 했지. 쉽게 남자를 얻는 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여자들 사이의 괴리감 같은게 기억 나지 않나? 어떤 여자들은 절망해서, 죽도록 굶어 말라깽이가 되거나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풍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코를 깎아내기도 했소. 그 비참함을 생각해보라고. - P378
...,. 누구를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값어치를 매기는 유일한 기준이었고, 엄마로서 응당 받아야 할 존경도 받지 못했소. 아예 엄마 노릇을 안 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든 것도 무리가 아니요.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그들은 보호받을 수 있고, 평화롭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성취할 수 있소.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말이오. 자, 이제 말해 보시오. 당신은 지적인 사람이니 의견을 듣고 싶소. 우리가 간과한 게 뭐라고 생각되시오?
사랑이요. 내가 말했다. 사랑? 사령관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 말이오? 사랑에 빠지는 것. 내가 말했다.
사령관은 그 천진한 소년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그렇소. 그가 말했다. 나도 그 잡지들을 읽었소. 그 잡지들에서 추구하던 게 그런 것이지? 안 그렇소? 하지만 통계를 보시오, 아가씨.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소? 사랑에 빠질만한 가치가 중매결혼도 언제나 연애 결혼만큼이나 성과가 있었소. 적어도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없소. - P379
나는 낯선 얼굴을 예상했지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조명 스위치를 켜는 사람은 닉이다. 닉도 그들과 한 패가 아니라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닉, 잠복 근무중인 ‘눈‘. 더러운 인간들이 더러운 짓을 하는 법이니까. 나쁜 새끼. 나는 생각한다. 입을 열어 그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닉이 내게 다가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괜찮아. 걱정 마. 오늘은 ‘메이데이‘야. 그들과 함께 가." 그는 내 진짜 이름을 부른다. 어째서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거지? "그들?" 나는 말한다. 그 뒤에 두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복도 천장의 조명 때문에 그들의 머리가 해골처럼 보인다. "당신 미쳤군요." - P502
나의 의혹은 그의 머리 위 허공을 떠돈다. 나를 경고해 의혹을 몰아내려는 어둠의 천사. 그래, 알 넛만 같다. 그라고 해서 ‘메이데이‘를 모르는 법이 어디 있나? ‘눈‘이라면 누구든 그 말을 알고 있을터이다. 그들은 지금쯤 숱한 육신으로부터 숱한 입에서 그 말을짜내고, 짓뭉개고, 비틀었을 터이다. "나를 믿어." 그는 말한다. 그 자체로는 그 어떤 효력도 없고, 어떤 보장도 해줄 수 없는 한마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그 제안에 허겁지겁 매달린다. 내게 남은 건 그게 전부니까. -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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