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사장이 정한시간에 가게로 들어갔을 때, 불도 켜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나는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하던 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힐긋 우리를 보곤 테이블을 손으로 두번 두드렸다. 사장 앞에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가게 물건 어디로 빼돌렸니?" - P129
정확히 뜻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나는 심장이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뭐가 사라졌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애초에 평범한 동네호프집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있을 리 없었다. "내가 발주를 잘못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다시 계산해보니까 병맥주 열다섯 상자, 소주 열상자가 비더라. 네달동안 스물다섯상자.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하면서 그냥 넘긴 내 잘못이지. 내가 안일했다. 내가 정말, " "저희 그런 적 없는데요." 성연이 사장의 말을 끊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 P129
"너희들 어려움 없도록 꽤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진심이었나보구나. 나도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눈에 밟혀서 지금껏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면서 잘해줬는데, 응? 챙긴다고 챙겼는데 그게 부족했나보구나." 간과 쓸개? 나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워서 반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성연의 표정을 보니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저기요. 사장님, 아니, 형. 아니라고요. 맥주인지, 소주인지, 그거 저희가 손댄 거 아니에요. 다른 알바생들도 있잖아요. 왜 우리만 의심하는데요. 우리가 거지라서요? 씨발, 우리 아니에요. 제발 믿어달라고요." 성연은 불끈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억울해했다. - P130
"누가 네 형이야. 형이라고 부르지 마. 아니라고? 그럼 통조림이랑 치즈랑 남은 치킨들 챙겨간 적도 없다는 거냐? 너희들 사정 아니까 눈감아준 거야. 너희 같은 새끼들은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냐?" 심장이 내 귓가에서 뛰는 것처럼, 펄떡거리는 소리가 생생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호흡을 골랐다. 그건 우리가 맞았다. 집에 갈 때 한번씩 손님들이 먹다 남긴 치킨들을 버리는 척하면서 비닐에 따로 담아 챙겼다. 그릇에 남은 치즈도 외투 속에 챙겨 넣었다. - P130
어차피 우리가 안 먹으면 쓰레기가 될 거니까. ‘우리집‘에 드나드는 아이들은 식은 음식들도 잘만 먹었다. 가끔 황도 통조림을 슬쩍하기도 했다. 창고에는 식재료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티가 나지 않을 줄 알았다. 누군가 먹다 남긴 음식들을 몰래 챙겨서 집에 가져간 사실을 들켰다는 게 수치스러웠고 그걸 사장이 알고도 지금껏 모른 체해주었다는 것이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식재료를 몇번 훔치긴 했지만 술을 몇 박스나 통째로 가져갈 만큼 우리는 치밀하지도 과감하지도 않다는 걸 말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도 궁색하게 들릴 것 같아서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에요. 저희 진짜 아니에요." 성연이 평소답지 않은 태도로 우물거렸다. - P131
사장은 팔짱을 끼고 숨을 푹푹 내쉬며 혼자서 화를 삭였다. 그리고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금고를 열었다. 나는 죽은 듯이 가만히 몸을 굳히고 사장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돌아온 사장은 우리 앞에 봉투 두개를 밀어주었다. 여느 때처럼 금색 봉투였다. - P131
가게에는 CCTV가 없었기에 성연이 어떻게 그 사람을 폭행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사장의 증언에 의하면 최소 30분간 무자비한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성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나를 만나러 ‘우리집‘까지 찾아왔다. 성연에게 주소를 물어왔다며 성연의 외할머니는 우리 손자가 누명을 쓴 게 분명하다고, 네가 아는 진실을 얘기해달라고 손을 붙잡고 부탁해왔다. 할머니의 손등에 파란색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죄송해요. 전 거기 없었어요. 저는 그날 그냥 집으로 왔거든요. 못 봤어요, 아무것도 나는 할머니의 까칠한 손의 감촉을 느끼며 그 말만 반복했다. - P133
성연은 8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한달 정도 수용되었다가 풀려났다. 소년원에서 그애가 나오는 날 나와 경우는 성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마중을 나갔다. 성연은 가족들보다 나와 경우를 더 반가워했다. 안에서 운동을 많이 했는지 체격이 커지고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어깨선 아래까지 길렀던 성연의 머리는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성연 특유의 진한 눈썹과 두드러진 눈썹뼈가 드러나자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고 강인해 보였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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