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넌 자신을 상냥하다고 생각하겠지!" 하고 그녀는 오랫동안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난 그녀 웃음이 그려 보이는, 그녀 생각보다 더 포착할수 없는 그 다른 부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 웃음은 이런 뜻인 것 같았다.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속지 않을 거야. 네가 날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없어. 난 네게 관심이 없으니까.‘ 그러나 요컨대 웃음이란 것은 그 뜻을 잘 이해했다고 확신할 만큼 그렇게 안전한 언어가 아니라고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실 질베르트의 말에는 애정이 넘쳤다. "아니, 어떤 점에서 내가 상냥하지 않다는 거지?" 하고 내가 물었다. "사실을 말해줘.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없을거야. 난 설명하고 싶지 않아." 하고 질베르트가말했다. 한순간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봐난 겁이 났고, 또 이것은 내게 또 다른 고통, 똑같이 생생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증법을 요하는 고통이었다. - P277
"네가 나에게 어떤 슬픔을 주고 있는지 안다면, 넌 말해 줄 텐데." 하지만 이 슬픔은, 그녀가 내 사랑을 의심한다면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난 내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난 정말 널 좋아했어.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이 ‘언젠가‘란 죄인들이 자신의 결백이 밝혀지리라고 확신하는 날이지, 어떤 신비스러운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심문받는 날은 결코 아니다.) 갑자기 용기를 내어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기에 그녀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 P278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비롯된 슬픔은, 비록 그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과 무관한 걱정거리나 일, 기쁨 가운데 끼어들어 우리 주의력이 이따금 그 슬픔으로 되돌아가려고 잠시 거기서 벗어난다 해도 여전히 쓰라린 법이다. 그러나 이 슬픔이 지금의 내 경우처럼 ㅡ 그 사람을 만날 기쁨으로 가득 찬 순간에 생겨나면, 지금까지 햇빛이 비치며 지속적으로 고요하던 영혼 속에 갑자기 저기압 지대가 나타나 성난 폭풍우를 일게 하므로, 우리는 그 폭풍우와 맞서 끝까지 싸울 수 있을지 어떨지도 결코 알지 못한다. 내 마음에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난 집으로 돌아가면서 심한 충격에사로잡혀 거의 정신이 나간 채로, 뭔가 핑계를 대어 질베르트곁에 돌아가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P278
우리 인생에서 보통 몇 번인가 부딪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 중 하나를 나는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딪혔을때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 이 기질이 바로 우리-의 사랑과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들, 또 그 여인들의 결점마저 만들어 낸다. -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한쪽 접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욕망, 사랑하지만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자만심을 품으면 우리를 지겨워할지도 모르므로 약간은 혼자 내버려 두는 편이 보다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되어 지나치게 겸손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욕망이 놓여 있다. - P279
다른 한쪽에는 고뇌가, -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고뇌가 아니라 ㅡ 여인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생각을 포기하고, 우리가 그녀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걸 그녀에게 믿게 하는 걸 포기하면서 그녀를 보러 갈 때라야 진정되는 고뇌가 놓여 있다. 만약 우리가 자만심이 놓인 저울에서는 나이와 더불어 커져 가는 나약함 때문에 의지를 소량 덜어 내고, 슬픔이 놓인 저울에서는 우리가 얻은 점점 더 심해져 가는 육체적인 고통을 추가한다면, 그때 우리를 스무 살로 데리고 가는 용감한 해결책 대신에, 너무 무거워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를 쉰 살로 내려가게 하는 다른 해결책을 보게 된다. - P279
스완 부인은 그녀의 ‘차‘를매우 중요시했다. "늦은 시각이면 언제라도 제가 있으니 차를 드시러 오세요."라고 남성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내고 매력을 풍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영어식 억양으로 발음하는 자기 말에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였는데, 그러면 상대는 마치 그 말이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며 주의를 요하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 경건한 태도로 그 말에 답례하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 P292
여기에는 앞서 말한 이유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며 그 때문에 스완 부인의 살롱에서 꽃들은 단순히 장식적인 특징만을 띠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와는 무관한, 어느 정도는 오데트가 과거에 보냈던 삶과 관계가 있었다. 유명한 화류계 여자로서 많은 시간을 정부를 위해 살았으며, 다시말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집에서 보냈으므로, 이 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살도록 했다. 정숙한 여인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건, 그래서 그 정숙한 여인에게 중요하게 보일수 있는 물건들은 화류계 여인에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녀 일과에서의 정점은 사교계에 나가려고 옷을 입을 때가 아니라, 남자를 위해 옷을 벗을 때다. 외출복을 입을 때와 마찬가지로 실내복이나 잠옷을 입어도 우아하게 보여야 한다. 다른 여인들이 보석을 과시할 때 그녀는 진주의 내밀함 속에 산다. 이런 삶이 은밀한 사치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드디어는 그에 대한 취향, 다시 말해 거의 비타산적이라 할수 있는 취향을 부여한다. - P292
스완 부인은 자신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꽃에 쏟아부었다. 그녀의 안락의자 옆에는 파르마 바이올렛*이나 마거리트 꽃잎을 띄워 놓은 커다란 크리스털 수반이 놓여 있었는데, 이 수반은 그 집에 도착한 손님 눈에 그녀가 좋아하는 일, 이를테면 자신의 기쁨을 위해 혼자 차를 마시다가 방해를 받았다는 듯 보이게 했다.
*파르마 바이올렛: 다년생 제비꽃으로 보라색 겹꽃을 피우며 향기가 은은해서 향수로 쓰인다. 이탈리아 🇮🇹 의 도시 파르마를 대표하는 꽃이다. - P293
1월 1일 내내 시계는 시간마다 울렸지만 질베르트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뒤늦은 연하장 또는 연말 우편물의 혼잡 때문에 늦게 도착한 연하장 몇 통을 받았던 터라 1월 3일과 4일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희망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날 동안 나는 무척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내가 질베르트를 단념했다는 사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지하지 않으며, 여전히 새해가 되면 그녀의 편지를 받을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준비할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그 희망이 고갈된걸 보면서, 나는 마치 두 번째 모르핀 약병을 쥐기도 전에 손에 쥔 병을 모두 비워 버린 환자마냥 괴로워했다. - P319
질베르트의 쨍긋한 얼굴을 보는 짧은 순간에 비해, 그녀가 우리의 화해를 위해 할 시도며, 심지어는 우리 약혼까지 제안하는 모습을 내가 꾸며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상력이 미래를 향해 끌어가는 이 힘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거로부터 길어 온 것이다. 질베르트가 어깨를 추켜올리던 모습을 보았던 아픔이 조금씩 지워져 갈수록 그녀의 매력에 대한 추억, 그녀를 내쪽으로 다시 오게 하고 싶었던 추억도 조금씩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과거의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미워한다고 믿었던 여자를 실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머리 모양이 멋있다든가 안색이 좋다고 말할 때면 그녀도거기 있었으면 싶었다. - P347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내게 초대 의사를 표해 왔는데 귀찮아서 모두 거절했다. 집에서는 내가 아버지를 따라 공식 만찬에 가지 않는다고 한바탕 언쟁이 벌어졌는데, 그 만찬에는 봉탕 부부가 그 무렵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조카딸 알베르틴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여러 시기는 서로 겹치곤 한다.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아무 상관도 없을 여인 때문에, 현재는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 사랑하게 될여인을 건방지게 거절한 것이다. - P347
그때 그녀를 만나는 데 동의했다면 조금 더 일찍 사랑에 빠졌을 테고, 그러면 현재의 고통을 줄이고 다른 고통으로 바꾸었을 텐데. (이건 사실이다.) 내 고통은 조금씩 변할 것이었다. - P348
난 12시쯤 개선문에 도착했다. 거리 입구에서 망을 보며, 겨우 몇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스완 부인이 집에서나오는 작은 길모퉁이를 지켜보았다. 이미 많은 산책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가는 시각이어서 남은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대부분 멋쟁이 신사들이었다. 갑자기 산책로 모랫길 위로 가장 아름다운 꽃, 정오에만 피는 꽃처럼 화려한 스완 부인이 뒤늦게 천천히 나타나 그녀 주위에 언제나 다른 옷차림의 꽃을 피웠는데, 특히 그녀의 연보랏빛 옷차림이 기억난다. 또 자신의 광휘가 가장 절정에 달하는 순간, 부인은 드레스에 흩뿌린 꽃잎들과 같은 뉘앙스의 커다란 파라솔 실크천을 기다란 꽃자루 위에 들어 올리며 펼쳤다. - P363
이 그녀를 둘러쌌다. 오전에 스완과 스완 부인의 집으로 그녀를 보러 왔거나 길에서 만난 클럽 회원 네댓 명이었다. 굽실거리는 검은색 또는 회색 무리가 거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스완부인 주위에 움직이지 않는 틀을 만들어, 혼자만이 강렬한 눈빛을 한 이 여인에게 흡사 창가에 다가가 밖을 내다보는 듯한, 이 모든 남자들 사이에서 앞을 내다보는 듯한 인상을 안겨주었으며, 그리하여 그녀를 부드러운 빛깔 속에 드러내면서 연약하지만 겁이 없는 마치 다른 종류의 인간, 미지의 인종, 거의 투사와도 같은 힘을 가진 인간의 출현처럼 솟아오르게 했다. 이런 힘 덕분에 그녀는 혼자서도 그 수많은 수행원들과 필적할 수 있을 듯 보였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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