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말》 나의 인생 중에서...
지금은 믿기지 않는 어이없는 일들에 씁쓸한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단 생각이 든다. 긴즈버그 같은 선구자들이 있어 주어서..!

ㅡ 긴 생의 기억들 자랄 때가장 기분 좋게 남은 기억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 - 2016년 8월 16일, 뉴멕시코 산타페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 P128
2는 내게 행운의 숫자다.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기기 이전에 나는 럿거스대학교에서 두 번째 여성 교수였다. 또한 컬럼비아대에서 두 번째 여성 교수였지만 종신재직권이 보장된 첫 여성 교수였다. 워싱턴 항소법원의 두 번째 여성 판사.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 <에런 하버 쇼〉 - P128
신이 내게 재능을 주신다면 위대한 디바가 되고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음치다. 그래서 나는 단 두 곳에서만 노래한다. 한 곳은 샤워기 아래, 다른 한 곳은 꿈속에서다. - 2017년 5월 24일, 아스펜 와이 펠로 토론회 - P129
1950년대 초반 (긴즈버그가 졸업한) 코넬대학교는 .………… 여학생 한명에 남학생 네 명이었기 때문에 여학생에게 좋은 학교로 통했다. 엄격한 쿼터제였다. 그 말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똑똑한지를 보여주는 건 곤란했다. 공부 같은 건 하지 않고 파티나 쫓아다니는 여자라는 인상을 주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화장실에서 공부를 했다. 기숙사에 돌아갈 때에는 이미 숙제를 다 한 상태였다. - 2016년 7월 14일, 성과 아카데미 인터뷰 - P129
(하버드대 로스쿨) 원장이 신입 여학생들을 환영한다며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 원장이 우리를 거실로 데리고 가더니 여학생들에게 한 명씩 돌아가며 남학생 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하버드대 로스쿨에 들어온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 2013년 2월 26일, <메이커스>(20세기 중반 미국의 여성운동을 그린 다큐멘터리)...... - P129
수많은 모욕이 가해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풍경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내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닐 때였다. <로리뷰> 발간에 참여하던 터라 라몬트도서관에 정기 간행물을 보러 갔다. 정문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못들어가요." "왜 못 들어간다는 거죠?" "여자니까요." ...... - 1993년 7월, 미상원법사위원회 인준 청문회 - P131
로스쿨에서 시아버지의 재정증명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처음에화가 몹시 났다. 내가 알기로 기혼 남학생 중에 장인의 재정 증명서를 내라고 요구받는 학생은 없었다. - 2004년 9월 2일, <온리인 아메리카>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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