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을 멈추고는 찻잔과 받침 접시를 한쪽으로 치웠다. 반지르르한 나무 식탁 위 찻잔이 있던 자리에 동그란 김이 생겨났다가 가장자리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한테는 조언을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네. 하긴 누가 조언을 한다 해도 내가 듣지도 않았을 테지만. 난 남자들의 세계에서 자랐네. 그래서 그 세계에서 잘 살 수 있으리라 착각했지. 그래도 그때 반항적으로 살았던 덕분에 다른 사람의 반항심을 아주 잘 알아볼수 있게 되었네. 하지만 전통을 무너트려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설령 있었다 해도 날 무너트리려는 전통에만 한정되어 있었지. 우리를 구속하는 힘의 존재는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네. 전통과 권위는 이제 결점으로 전락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어. 조금도 말일세. - P190
내가 알레한드라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도 당연하지. 사실 그애 처지는 나보다 더 심각해. 하지만 그 애가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걸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절대 없게 할 걸세.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내가 잘 알아. 그 애는 남들이 뭐라 하든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 P190
이상적인 세계에서야 게으름뱅이들의 수다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겠지. 하지만현실 세계에서는 달라. 그것도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소문 때문에 피를 흘리는 일까지 일어난다네. 심지어 죽기도 하지. 친척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난 두 눈으로 직접 보았어. 알레한드라는 구닥다리 전통이라고 무시하지만.....…. - P191
그녀는 물러가라는 뜻인 동시에 이야기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듯불완전한 손을 저었다. 그러다 문득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 애보다 어리다고 해서 캄포(시골)에서 단둘이 말을 타고 돌아다녀도 괜찮은 것은 아닐세.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알레한드라에게 한마디 할까 하다가 안 하기로 했네.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복도에서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가들렸다. 부엌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그녀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P191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젊은 처자의 평판을 고려해 주면 고맙겠네.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자네 말을 믿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있어. 여긴 미국과는 달라. 여자는 평판 하나에 죽고 살지. 알겠습니다. 용서라는 건 있을 수 없어. 네? 용서라는 건 있을 수 없네. 여자에겐 말이야. 남자야 명예를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지.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 P191
그는 의자에 놓아둔 모자를 네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아요. 옳지 않다고? 그녀는 깜박 잊었던 것이 새삼 생각났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 이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야. 명심하게나. 이건 누가 말해야하는가의 문제야. 이 경우에는 내가 말해야 하는 거지. 복도에서 시계가 똑딱거렸다. 그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 일 때문에 굳이 절 부르실 것까지는 없었을 텐데요. 맞네. 그래서 여태 자네를 안 불렀던 거야.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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