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었을 때, 루이의 책 사이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털을 발견했다. 하얀 털과 회색 털이었다. 그걸 본 순간구르듯이 집을 나서 자전거를 타고 미타카로 달렸다. 차에치일 뻔하고 밭으로 떨어져도 다시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덧문을 굳게 닫은 그 어두운 방 안에 루이가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빨간불을 무시하고, 할머니를 치고, 채소가게 앞을 들이박아도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루이는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나는 루이와 함께 갈 생각이었다. 흰 장미의 심연까지 갈생각이었다. - P235
성별은 관계없었다. 이 사람이라면 나의 고독을 메워줄 수있으리라는 식의 계산을 한 것도 아니다. 나는 루이가 쓴 소설의 이상적인 독자도 아니었다. 그저 애처로우리만치 순수한 영혼의 조각에 아주 살짝이라도 스쳐버린 이상, 거기서눈을 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그런 상대와 한 우산 아래에 들어가버리면 끝도 없이 곁에 꼭 붙어 있고 싶어지는 게 내 성격이었다. - P34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다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간단히 헤어질 수 있는 걸까. 나를 이런 몸으로 만든 건 루이가 아니던가. 그 음란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풍만하게 만들고, 허리와 엉덩이를 성숙시키고, 감도를 좋게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다름 아닌 여자의 손에 의해 더욱 여성스럽게 변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아이러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 P103
그럼에도 역시 이렇게 밀도 짙은 육체관계가 영원히 이어질 리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섹스를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더 이상 루이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 지어진 채 만난 것이다. 만나자마자 서로의 몸을 원했다. 상대가여자라는 이유로 고민도 하지 않고서. 우리에게 순애 기간따위는 없었다. 루이는 끝없이 나를 원했고, 나는 원하는 만큼 주었다. 루이에게서는 늘 한시도 주체할 수 없는 절실한욕망이 넘쳐흘러 그걸 받아들이는 사이 내게도 욕망이 옮았고, 몸을 섞을 때마다 욕망은 승화되고 그 자리엔 절실함만이 남았다. 그래서 서로를 안으면 안을수록 우리는 절실해졌다. 순애는 나중에 찾아왔다. - P103
기상청이 장마가 끝났음을 발표했을 무렵, 마지막 고양이가 사라졌다. 그릇에는 내가 지난주에 넣어둔 회가 악취를 풍기며 파리를 꾀고 있었다. 그 그릇 아래에 책 같은 게 놓여 있는 것을발견했다. 후루마키 씨가 뒤늦게 내 메모에 답을 준 건가 싶어 집어보았다. 그건 아시아의 차이나타운을 모아둔 사진집이었다. 찍은 사람은 이소무라 도시미쓰라는 사진가로, 사진집 말미에실런 약력에 의하면 전 세계의 차이나타운을 찍는 일을 라이프워크로 삼고 있다고 한다. 사진집은 그 외에도 《뉴욕의차이나타운> <LA의 차이나타운》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인도차이나반도의 차이나타운> 등이 있었다. - P204
이 《동남아시아의 차이나타운》은 그의 다섯 번째 사진집이었다. 후루마키 씨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 채 나는 급하게 페이지를 들춰보았다. 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전율하며 숨을 삼켰다. 거기엔 루이가 찍혀 있었다. 아니, 그건 루이가 아니었다. 루이와 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 남동생이었다. - P205
나는 바자이를 잡아 슬럼을 빠져나온 후 혹시 몰라 고양이 저택으로 돌아가보았다. 그러나 이미 루이는 체크아웃한 후였다. 로비에는 어제의 그 배낭여행객이 똑같은 자세로TV를 보고 있었다. 똑같은 고양이도 옆에 있었고, TV에는수하르토 대통령이 나오고 있었다. 순간 어제로부터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슬럼에 갔던 일도, 아편굴에서 루이와 만났던 일도, 변두리의 싸구려 숙소에서 했던 황홀한 섹스도, 루이의 긴 속사정이야기도, 모든것이 이 차이나타운이 보여준 백일몽이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아편을 흡입당한 내가 환각에 빠졌던 건아닐까? - P229
손목시계를 보니 바늘이 멈춰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루이의 편지도 없어졌다. 다만 이 손안에 루이의 차가운 몸의감촉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차가운 몸이었다. 얼음을 끌어안은 듯했다. 그게 야마노베 루이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다.
설마 그 이후로 루이와 만나지 못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P229
전화를 끊었을 때, 루이싀 책 사이에 섞여들어가 있는 고양이털을 발견했다. 하얀 털과 회색 털이었다. 그걸 본 순간구르듯이 집을 나서 자전거를 타고 미타카로 달렸다. 차에치일 뻔하고 밭으로 떨어져도 다시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덧문을 굳게 닫은 그 어두운 방 안에 루이가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빨간불을 무시하고, 할머니를 치고, 채소가게 앞을 들이박아도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루이는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나는 루이와 함께 갈 생각이었다.
흰 장미의 심연까지 갈생각이었다.
끝.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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