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소설집 《완전한 영혼》 중 <영산홍 추억>
정찬의 소설은 권력과 인간의 관계를 관념적, 형이상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읽었을 때 어렵게 느껴지고 일정한 스토리 라인을 잡기가 어려운 점이 특징인 것 같다.
그나마 수록된 단편 중 <완전한 영혼>과 <영산홍 추억>이 내용 이해가 쉽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두 단편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신춘문예나 문학상에 준하는 수준의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지극히 관념적, 형이상학적 소재‘들이란 것이니 재미를 말하긴 이미 힘들어진다.
<영산홍 추억>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떠올리게 한다. 빨치산, 미전향 장기수와 관련된 단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빨치산 활동에 대한 소설은 저 멀리 <태백산맥>도 있겠지만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어서 더 먼저 떠오른 측면이 있다.
재미를 말하긴 어렵겠지만, <영산홍 추억> 중에 이 말들만은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은 예감이 든다!
˝... 인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있지만 역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역사 앞에 무릎 꿇지않는 권력을 쟁취한 자들로 인하여 역사의 바퀴는 결코 정지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하다 죽기 직전 집으로 돌아와 임종 순간에 남긴 말도...
˝... 나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최근 재발간 된 《완전한 영혼》엔 실리지 않은 마지막 단편 <황금빛 땅>은 권력과 말, 그리고 참된 샤먼, 주술, 동학 등의 말이 남겠지만 다시 읽는다해도 기억 속에 남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소재여서...
참고로 <황금빛 땅>은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를 떠올리면 될거 같다. 복사꽃 피어 있는 무릉도원을 뜻하는 거니까. 그 복사꽃이 세상에 가득한 인간의 거짓된 말들로 인해 산산히 흩어져버리는 모습으로 소설이 끝난다.

<영산홍 추억> 중에서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좌익 사상범들은 몇 개의 감옥에서 풀려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살됨으로써 현재 1950년 이전부터 계속 구금된 좌익 사상범들은 한 사람도 없다. 지금의 좌익 사상범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혹은 정전 직후의 혼란한 시기의 사법 체계에 의해 재판을 받은 이들이다. - P162
이때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은 4·19 직후 대부분 20년으로 감형되었고, 따라서 1960년 중반쯤부터 시작된 만기출옥이 1970년에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불안을 느낀 유신 정권은 73년 전향 공작 전담반을 설치한 후 전향 강요 고문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 파괴적 고문의 결과 비전향 사상범들은 세 가지 인간으로 분류되었다. 고문을 이기지 못해 전향한 이, 고문을 견디다 주검으로 화한 이, 그리고 끝내 고문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상을 지킨 이들이다. 죽은 이는 소내 의무 과장에 의해 사인이 조작되어 흙 속에 묻혔고, 사상을 지킨 이에게는 새로운 족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ㅡ영산홍 추억 중에서 - P162
"그것이 바로 사회안전법이라는 괴물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향을 하지 않으면 만기가 되어도 출소를 시키지 않는 법이다.
새파랗게 젊은 나에게 가없는 애정을 쏟았던 황선생이라는 분은 53년 이른바 빨치산 신분으로 체포되어 22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73년의 그 살인적 고문을 이겨낸 분이었다.
황선생이 받은 고문은 정말 끔찍했다. 매타작에서부터 시작되어 물고문, 전기고문, 바늘로 온몸 찌르기, 관절뽑기, 비녀꼽기,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살 태우기 등등 생명체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그분은 담담히 회상하고 있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물었다. 도대체 전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죄악이기에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느냐고." - P162
선배는 말을 멈추고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비둘기떼들이 날개를 치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분은 말했다. 인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있지만 역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정신 속으로 섬광처럼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말. 어둠 속에서 홀로, 앙상한 뼈처럼 서 있는 말. "그 동안 나는 역사라는 말을 수없이 해왔고, 또 들어왔지만, 그토록 무게가 실린 말과 마주치지는 못했다. 뭐라고 할까………… 존재의 전 무게로 육박해온다고 할까.….." 선배의 눈은 회상으로 흐려지고 있었다. - P163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궤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이 궤적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운동에 의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힘, 즉 권력으로 전화된다. 그러므로 역사란 이데올로기를 권력화시키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권력화로의 운동 때문이다. 역사가 수레라면 권력은 바퀴이며 인간은 이 바퀴를 굴리고 있다. 역사에 철저히 복무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권력화시키는 운동에 철저히 복무함을 뜻한다. 철저한 역사 의식은 철저한 권력화의 의지와 다름이 아니다. 그러면 황선생은 어떤 모습으로 역사 앞에 서 있는가. 그 모습이 어떠하길래 나에게 전존재의 무게로 육박해오는가?" - P163
"황선생은 신체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당한 감금된 존재이다. 권력이란 살아 있는 자, 운동하는 자만이 움켜쥔다. 죽은 자, 감금된 자는 권력을 잃은 자이다.
권력자는 권력을 잃은 자를 죽일 수도 있고, 유폐할 수도 있다. 황 선생은 권력을 잃었기에 유폐되었던 것이다. 권력자는 죽임과 유폐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역사의 바퀴를 굴리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냉혹한 법칙이다. - P163
그런데 유신 권력자들이 사회안전법이라는 새로운 감금의 틀을 씌우는 순간, 황선생은 새로운 모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회안전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상 전향을 강제하는 법이다. 전향을 하지 않으면 감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향을 하면 감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황선생은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즉 가슴속에 품은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유폐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유폐의 주체는 유신 권력이 아니라 황선생 자신이었다. 스스로에게 유폐를 명령한 황선생의 모습은 바로 권력자의 모습이다.
자신의 선택한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권력화시키는 치열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유신 정권은 사회안전법을 만듦으로써 어리석게도 자신의 권력을 송두리째 황선생에게 갖다바치고 말았다. - P163
나에게 있어서 황 선생은 관념이 아니다. 그는 내 영혼에 숨소리를 불어넣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그 생명체가 유폐의 굴속에서 이데올로기의 뼈를 안고 시간과 싸워왔다. 이 싸움에서 그는 권력을 획득했다. 움직이지 않는 역사에 바퀴를 단 것이다.
황선생은 나에게 진실을 말했다. 역사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말은 진실이다. 권력자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권력을 잃은 자만이 무릎을 꿇는다. 그는 역사에 바퀴를 달았다. 바퀴는 결코 정지하지 않는다. 결코……."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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