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찬의 소설집 《완전한 영혼》ㅡ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두어야겠다.
표제작 <완전한 영혼>은 5.18 배경 소설이다.
그런데 무려 1992년 초판본이다. 내가 사는 곳이 市로 승격도 되기 전 소장도서이다. 격세지감ㅇㅣ로세... 알라딘에선 초판검색이 안된다. 하...
검색은 돼야 하는거 아닌가요?
아무튼 2018년 개정판과 차이점이 뭔가 살펴봤다.
그랬더니 초판본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있고, 2018년 판본에는 6편이 실려있다. <황금빛 땅>이란 단편이 ˝서사의 흐름과 양식적 조화를 고려(알라딘 책소개 참고)˝하여 초판본에만 실려있고 개정판에서는 빠졌다. 개정판본에 정희진 샘 해설이 실린 것도 달라진 점이다. 정희진 샘 해설도 궁금하긴 하지만 책은 최대한 덜 사고 빌려볼 수 있으면 빌려보는게 여러모로 이득!
하지만, 책이 진짜 낡았다. ㅠㅠ
˝회상이란, 그것이 즐거움이든 혹은 괴로움이든 사유(思惟)의 일상적 영역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은 영원한 쇠사슬인 동시에 자유의 짓푸른 공간이다.˝(7)
누군가를 회상하는 스토리임을 이미 알려주는 시작이다. 나는 이른바 80년대 운동권 학생이었고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제적을 당하였다. 이로 미루어 짐작되는 바 제대로 된 밥벌이가 어려운 상황이란 걸 예상할 수 있다. 고문의 고통 앞에 무릎 꿇은 것을 치욕스러운 패배로 받아들인 나는 그러나 밥 벌이를 위해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며 지내는 일상에 스스로 혐오감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운동권 선배인 지성수의 소개로 출판사에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곳에서 어떠한 연유로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장인하‘ 씨를 처음 만나게 된다.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하는 그와 점차 필담으로나마 대화를 나누게 되고 ‘장인하‘라는 사람에 대해 점차 알아가게 된다. 장인하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장인하가 드러내는 내면 세계에는 독특하고 미묘한 울림이 있었다. 뭐라고 할까, 단순한 투명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투명한 단순함이라고 할까. 말하자면 너무나 단순해 투명해 보일 지경이거나, 아니면 투명함이 지나쳐 단순해 보이거나 그 어느 쪽이었다.˝(17)
결국 지성수도 나도 이런 장인하 씨에게 깊이 동화되고 지성수는 후일에 장인하에 대해 ˝소중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너무 맑고 천진한 사람이어서 그것이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아 바보스럽기까지해 보이는 사람!
소설은 ‘장인하‘가 80년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째서 귀를 듣지 못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지성수와 장인하의 긴 인연의 고리가 시작된 사건들까지 연결이 되면서 나의 회상은 이어진다.
˝나는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 세계를 진보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 성실한 영혼을 가진 이만이 획득할 수 있는 믿음이었다...
... 진보에의 믿음은 절망한 자에게 더 푸른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80년대 우리의 영혼을 떠받친 그 처절히 아름다운 믿음은 광주의 절망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느냐.˝(64~65)
이 세계를 진보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믿었던 젊은 영혼들. 80년 5월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에 투쟁하는 수많은 젊은 영혼들을 고문으로 짓밟은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 나라는 지금 진보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장인하‘와 ‘지성수‘의 입으로 전해주는 80년 5월의 광주에서의 끔찍한 참상을 듣다 자연스럽게 한 강의 《소년이 온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사실 다시 읽을래도 도저히 다시 읽을 용기가 없지만 시체 안치실에서 일하는 소년과 장인하가 겹쳐 보이면서 다시 한번 그 잔혹함에 가슴이 미어지듯 고통스럽기도 했다.
˝생명을 신뢰하는 선천적 본능˝을 지닌 장인하이지만 80년 5월의 광주에서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학생들(지성수 포함하여)을 마구잡이로 두들겨패는 공수부대원의 총을 빼앗으려다(하도 어이가 없었던 공수들이 학생들을 끌고 가지 않았고) 진압봉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골절이 된다. 이 사고로 결국 귀를 듣지 못하게 되었고, 나에게 한 고백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총을 막 잡으려는데 제 몸에서 무슨 소리가 났습니다. 무엇인가가 허물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내부가 파열되는 소리였지요. 정신을 잃었습니다.˝(41)
정신이 붕괴되고 허물어진 채로 귀까지 듣지 못하게 된 장인하는 시체 안치소 일을 자원하고 그곳에서 맞닥뜨린 삶과 죽음은 차라리 그에게 평온한 시간을 주었을지 모른다. 그 참혹함을 목격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천진하고 투명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에게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 그리고 ˝슬픔에 가득한 얼굴과 천진한 웃음˝ 뒤에 감춰진 그의 고통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런지... 장인하의 죽음 뒤에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조그만 죽음이 회상 속에서 완전한 영혼의 모습˝으로 떠오를 때, 그리고 ˝지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저 너머에서 지상으로 흘러내려오는 그 비현실적 영혼의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인간 장인하에 대한 나의 회상은 끝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