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에서 잠자게 내버려 둔다. 그보다 더하다! 죽어가게 썩어가게 방치해서 우리는 스무 살 적에 우리를 일으키는 영혼의 너그러운 움직임들을 나중에는 순진함, 어리석음이라 부른다. 뜨겁고 순수했던 우리의 사랑이 가장 천박한 쾌락의 퇴폐적인 외피를 두른다. 
그날 밤, 과거를 되찾은 것은 내 기억만이 아니었다. 내 가슴도 그랬다. 그 분노, 그 안달, 그 강렬한 행복의 욕구, 나는 그것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살아 있는 여자가 아니라 내 꿈들과 같은 직물로 지어진 유령이었다. 추억이었다.
전혀 손에 잡히지 않고, 전혀 뜨겁지 않은 심장이 말라버린 이 늙은 인간아, 너에게도 열기가 필요하느냐? - P128

내 입으로 말을 해다오. 너무나 이성적이고, 너무나 정숙한 엘렌에게 거짓말 말라고 말해다오. 그녀의 연인은 죽지 않았다고, 그녀가 나를 너무나 빨리 묻어버렸다고,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다오. 그녀의 말은 거짓이었다!  - P128

그녀 속에 갇힌 진짜 여자, 쾌락을 사랑하는 뜨겁고 쾌활하고 당돌한 여자를 알았던 것은 바로 나다. 오로지 나뿐이다!
프랑수아가 가진 건 무덤의 비문만큼이나 거짓된, 그 여자의 창백하고 차가운 이미지뿐, 나는, 나는 지금은 죽은 걸 가졌다. 나는 그녀의 젊음을 가졌다. - P129

그래, 바로 당신, 당신은 남편에게 이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 한때의 미친 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고결한 여자지. 정말 그래? 한순간의 미친 짓?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산 건 그때뿐이었어.  - P129

그 이후로 당신은 사는 척만 했어. 사는 시늉만 했지. 단 한 번밖에 맛보지 못하는 삶의 진정한 맛, 당신도 알다시피 젊은 입술에서 나는 그 과일 맛, 당신은 내 덕에, 오로지 내 덕에 그 맛을 봤어. ‘가엾은 실비오, 쥐구멍 같은 곳에서 늙어가는 내 가엾은 실비오.‘ 

그런데 정말 날 잊었던 거야? 공정해야 하니까 말하는데, 나도 당신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내가 나를 되찾기 위해서는 브리지트의 말, 어제 콜레트가 보여줬던 부질없는 절망과 부끄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과하게 마신 포도주가 필요했어. 하지만 당신이 거기 있는 한, 나는 당신을 그렇게 쉽게 놔주지 않을 거야. 확신해도 좋아. 

진실? 당신은 진실을 내게서 듣게 될 거야. 예전에 내가 처음으로 당신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경이로운 행복의 원천인지 깨닫게 해줬을 때 들었던 것처럼(당신은 원하지 않는 척했어. 소심하고 순수했으니까, 당시에는・・・・・…. 입맞춤, 좋아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돼요………. 그래도 당신은 넘어갔어. 오, 당신은 얼마나 탐나는 여자였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했는지………. ‘그건 미망에 빠진 한순간, 광기에 휘둘린 몇주였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아요.‘ 이렇게 말하긴 아주 쉽지. 

하지만 당신도 진실을 지우진 못할 거야.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는 진실을. 당신은 프랑수아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나를 잃느니 차라리 모든 걸 받아들일 정도로 나를 사랑했어.  - P130

오, 조금 전에 콜레트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 목가적인 물랭뇌프로 외간 남자를 들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늙어가는 선량한 부인, 자식들을 도포는 착한 엄마로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더군! 

그럼, 당신은 어땠지? 당신 딸이 누굴 닮았겠어? 브리지트 역시 우리 둘을 닮았어. 그 아이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우린 이십 년 전에 죽었어. 우린 이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게 바로 진실이야. 

프랑수아를 사랑한다고, 당신 입으로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 그래, 그는 당신의 친구, 당신의 남편이야. 함께 지내는데 익숙해졌지. 당신과 프랑수아는 오빠와 누이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아닌 게 아니라, 룰루가 태어난 이후로 당신 둘은 오빠와 누이처럼 살았어.  - P131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 당신은 날 사랑했어.
자, 들어봐, 내 곁으로 와서 떠올려봐! 그 사이에 위선적으로 변한 거야? 아니야, 내가 늘 생각해왔듯이 당신은 다른 사람이야.

당신이 뭐라고 말했더라………? 그래, 스무살 시절에는 누가 갑자기 우리의 삶에 끼어들지, 날개가 달리고 눈부시게 찬란한 낯선 이가 길길이 뛰며 우리의 피에 불을 붙이고 우리의 삶을 망가뜨린 다음 훌쩍 가버리지.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리지. 나는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낯선 이를 되살리고 싶어.  - P131

내 말을 들어봐 날 봐 날 못 알아보겠어? 희고 추웠던 그 큰 복도, 당신의 늙은 남편 (프랑수아 말고 첫 번째 남편, 너무 오래전에 죽어서 지금은 아무도 이름을 입에 올리지않는 바로 그 남편), 침대에 누워 있던 그 남편을 떠올려봐. 그의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지. 질투가 심하고 의심도 많았으니까. 당신과 내가 입을 맞췄을 때, 전등 불빛 탓에 천장에 비친 그 큰 그림자, 내가 가끔 꿈에서 다시 보는 그 그림자, 그게 바로 당신이라고, 그게 바라 나라고 우리는 생각해 왔어. 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도 나도 아니었어. 그건 우리와 비슷해도 우리와는 다른,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어! - P131

내가 엘렌을 처음 본 날 그녀는 당시에, 그리고 고향 마을에서 머리카락이 검은 젊은 부인에게는 너무과감하다고 여겨지는 붉은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당시의 그녀를 묘사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우리가 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렇듯 그녀를 너무 가까이에서 봤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깨무는 과일의 형태와 색깔을 알고 있는가? 내가 엘렌을 사랑했던 만큼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남자는 첫만남에 입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 듯하다. 검은 눈, 금빛 피부, 붉은색 벨벳 드레스, 열렬하고 쾌활한 동시에 혼란스러운 기색, 도발, 불안, 충동이 묻어나는 젊은 여자 특유의 표정…………. 아직도 기억난다•••••••••. - P136

나는 오늘날의 청년들보다 훨씬 민첩하고 강하고 쾌활하고 모험을 즐겼다. 마르크 오네가 당시의 나를 약간 닮았다. 나도 그처럼 과한 도덕심에 질식하지 않았다. 나도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을 물에 던져버릴수 있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고, 이웃의 여자를 유혹하고, 몸싸움을 벌이고, 더 심한 피로와 더 혹독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젊은 한때가 있었다.
- P137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지방 촌마을1의 거실, 살며시 열려 건반이 드러나는 커다란 피아노, 연어 살빛의 드레스를 입고 <어제보다는 낫고 내일보다는 못한 오늘>을 부르는 세실 쿠드레, 꾸벅꾸벅 졸면서 구운 거위와 토끼 시베를 힘겹게 소화하는 사람들, 너무나 가까워서 꿈속에서처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너무나 가까워서 섬세하고 신선한 피부의 향기가 느껴지는 붉은 드레스 차림의 여자, 너무나 가까운, 하지만 너무나 먼………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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