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M자 곡선을 그리던 인생이 끝나가는거 같다. 미스터 버티고 씨..

나는 그 집을 찾아내는데 좀 애를 먹었고,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자세히그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다. 옛날에 그 집은 도시 외곽의 텅빈 들판으로 이어진 비포장 도로변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이제는 주거 중심지로 변해서 주위에 다른 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또 예전의 그 길도 코로나도 애비뉴라는 이름이 붙어 현대적인 시설들을 모두 다 갖추고 있었다. 보도, 가로등, 그리고 한가운데에 흰 줄이 쳐진 검은 아스팔트. 하지만 그 집은 썩 괜찮아 보였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회색빛의 11월 하늘 밑에서 지붕널들이 하얗게 빛났고, 예후디 사부가 앞뜰에 심었던 조그만 나무들은 거인처럼 지붕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누가 그 집을 소유하고 있건 관리를 잘 해온 덕분에 이제는 아주 고풍스럽고 역사적인, 지난 시대의 유서 깊은 저택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있었다. - P364
나는 차를 세워 놓고 현관 계단을 올라갔다. 늦은 오후였지만아래층 창문에는 불이 켜져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온 이상 내친김에 벨을 눌러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못돼 먹지 않았다면 옛일을 생각해서 나를 안으로 들여집안을 한바퀴 둘러보게 해줄지도 몰랐다. 내가바라고 있던것은 단지 그것, 그저 한번 둘러보자는 것이었다. 현관문 밖은날씨가 꽤 쌀쌀해서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거기에서 있을 동안 내가 처음으로 그 집을 찾아들었던, 지독한 눈보라속에서 길을 잃고 초주검이 되었던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364
안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발소리를 듣기까지는 벨을 두 번울려야 했다. 마침내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위더스푼 부인을 처음만났던 때의 기억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내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다름 아닌 위더스푼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시간이 좀 걸렸다. 더 나이가 들고 더 허약해지고 더 주름살이 많아진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더라도 바로 그 위더스푼 부인이 틀림없었다. 나는 어디에서라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1936년 이후로 체중이 단 1킬로그램도 불지 않았고, 머리칼은 여전히 붉은 기가 도는 빛깔로 멋지게 염색이 되어 있었고, 연한 파란색 눈은 여전히 푸르고 밝았다. 그녀의 나이는 그때 일흔넷 아니면 일흔다섯이었지만 예순 ㅡ 아무리 많게 봐야 예순셋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멋진 옷을 입고, 여전히꼿꼿한 자세로, 입에 담배를 물고 왼손에는 스카치 위스키 잔을 든 그녀가 문간으로 나왔다. 누구라도 그런 여자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뒤로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변화와 재난을 겪었지만 위더스푼 부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멋진 여자였다. - P365
그 나머지는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눈물을 흘리고 저간의 일들을 주고받으며 자정이 넘어 한밤중까지 얘기를 계속했다.
그것은 코로나도 애비뉴에서의 올드 랭 사인(그리운 옛날)이었다. 그날 밤 우리가 했던 것보다 더 멋진 재회가 또다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내게 있었던 일들을 대강 그녀에게 얘기했지만, 그녀의 얘기도 내 얘기 못지않게 이상하고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텍사스에서 시추 붐이 일던 기간에 수백만 달러를 곱절로 불리는 대신 석유가 안 나는 땅에 드릴을 박아 파산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석유 탐사 게임이 대개는 어림짐작이었는데, 너무 여러번 헛다리를 짚었던 것이다. 1938년이 되자 그녀는 재산의 10분의 9를 잃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아직 가난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뉴욕 5번가의 부유층이 아니었고, 몇 번 더 사업을 벌였다가 여의치 못하자 마침내는 짐을 챙겨 위치토로 돌아왔다. - P366
나를 거기에 머물도록 하는 데에는 많은 설득이 필요 없었다. 관리인 일이라는 것은 임시변통으로 하는 미봉책에 불과했던 데다, 이제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자리가 생긴 이상, 나로서는 계획을 바꾸는 일에 대해서 두 번 다시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봉급은 물론 그중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위더스푼 부인이 내게 빌리가 하던 일을 맡아 달라고 하자 나는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겠다고 대답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내게 자기집 부엌에서 냄비나 닦으며 있으라고 했더라도 나는 역시 그러겠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어렸을 적에 차지했던 바로 그 꼭대기 층 방을 쓰기로 했고, 그 사업의 요령을 일단 터득하고 나자 나는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 나는 위층에서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있다가 벽 저편에서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녀의 방으로 내려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음에는 그녀를품에 안고 잠이 들 때까지 얼러 주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같이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나는 커다란 더블 베드에서 그녀 옆에 누워 있었다. 옛날 그녀가 예후디 사부와 함께 쓰던 바로 그 침대였다. 이제는 그녀의옆에서 잠을 자는 것이, 그녀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남자가 되는것이 내 차례가 된 셈이었다. 우리가 잠자리를 함께했던 것은 대체로 서로에게서 위안과 친밀감을 느껴 두 침대에서 자기보다는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이따금씩 침대 시트에 불이 붙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 P370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그녀는 대체로 좋은 건강을 유지했다. 80대 중반이 되어서도 그녀는 여전히 저녁 식사 전에 두 잔의 스카치위스키를 마셨고, 이따금씩 담배를 피웠고, 거의 날마다 멋지게 차려입고서 초대형 캐딜락 승용차로 한바탕씩 달릴 만큼기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흔 살인가 아흔한살까지 살았는데그녀가 어느 세기에 태어났는지는 영 확실하지가 않다 - 마지막 18개월 정도만 제외한다면 그녀에게는 삶이 그리 고단하지 않았다. 물론 죽을 때가 가까워서는 거의 눈멀고 귀먹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그녀다웠다. 나는 그녀를 양로원에 집어넣거나 그녀를 돌봐줄 간호사를 고용하는 대신 사업을 정리하고 온갖 지저분한 일을 내가 직접 떠맡았다. 나 또한 그녀에게 그 정도 빚을 지지 않았던가? 나는 그녀를 목욕시키고,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고, 그녀를 품에 안아서 집 안을 돌아다니고, 일을 벌인 뒤마다 그녀가 한때 나를 닦아주었던 것처럼 그녀의 엉덩이에서 똥을 닦아 주었다. - P370
장례식은 나무랄 데 없는 행사였다. 나는 가왓돈이 나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그녀의 재산 - 집, 차, 그녀가 직접 벌어들인 돈과 내가 그녀를 위해 벌어들인 돈 - 이 모두 내 것이 된 데다, 과자 단지에는 나를 앞으로 75년이나 100년동안 너끈히 지탱해 줄 여유가 있는 이상, 그녀에게 거창한 송별식, 위치토가 그때까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떠들썩한 파티를벌여 주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 P371
그것이 일년 반 전의 일이었다. 처음 두 달 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맥없이 집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정원 일을 좋아해 본 적도 없었고, 골프는 두세 번 쳐보다 싫증이 났고, 일흔여섯 살 나이에 다시 사업을 시작할 열망도 없었다. 사업은 매리언이 있었기에 재미있었지만 그녀가 곁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캔자스를떠나서 세상을 둘러볼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분명한 계획을 짤수 있기도 전에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구해 주었다. 사실 나로서도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내려올 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채 한시간도 안 되어 나는 2층 응접실 책상에 앉아 펜을 손에 들고 첫번째 문장을 끼적거리고 있었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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