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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언어
박선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작가가 말하는 우아한 언어란 사진이었다. 우아한 사진과 필립 퍼키스의 우아한 사진 강의 노트...
중간 중간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필립 퍼키스의 사진 강의 노트>에 수록된 일부 내용들도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마음이 끌리는 글이었다.
공원의 벤치나 숲속의 바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면
내가 보는 대상에 따라 시야가 급속히 바뀌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여기서 저기로 시선을 돌린다.
다시 말하면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바라본
전체가 한 장의 사진으로 조합되어 마음속에
각인된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들었던 지리멸렬한
설명과는 다른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의 뇌와 눈은 얼마간 서로 공모자인 셈이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이런 짧은 글들...
왜 장가 못 가느냐고 주변에서 핀잔 받던 내가
어느 사이엔가 1녀 2남의 어엿한 가장이 된
것이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는 소리가 온 집 안 가득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몰래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뒹굴기도 일쑤였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 사는 분위기를 먼 훗날
우리의 작은 전기(傳記)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만 돌아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ㅡ 전몽각 <윤미네 집> 중에서
그런데 어젯 밤 이 글을 읽다가 갑자기 격하게 울컥해져서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고 2 올라가던 18살에 돌아가신 젊디 젊으셨던 내 아버지.
그 아버지의 나이보다 18년만큼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나.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에 18년을 더하면 내 나이가 된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새로 나온 기계를 참 좋아하셨다. 집에서 음악을 들으시고 동그란 녹음 테이프가 돌아가는 녹음기와 마이크를 사서 노래 녹음도 하시고, 특히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다. 여동생과 나에게 예쁜 옷을 입게 하시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걸 즐기셨다. 그때 찍어주셨던 사진과 앨범은 아직 친정 엄마 집에 보관되어 있다. 엄마 보러 갔다 가끔 그 앨범들 보곤 했기 때문에 그때 우리가 취했던 포즈와 표정, 동네 집들과 길, 풍경들. 그리고 웃기는 건 우리가 들고 다니며 먹던 '죠니'라고 하는 과자까지 사진에 찍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기억이 나고 해 질 무렵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는데 그 때 이후로 아버지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셔서 요양 차 부산에 계신 친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 계시던 몇 년 간 우린 아버지의 카메라도 녹음기도 전축도 모두 잊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하던 취미 생활 등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전율이란...
그 밤 갑자기 나의 작은 카메라가 생각이 나서 오늘 아침 다락방으로 올라가 카메라를 갖고 내려왔다.
좀 전에 충전이 다 된 카메라를 돌려보니 2019년 12월 남편과 베트남 여행가서 찍었던 사진들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걸 보았다. 코로나 이전의 시간에 멈춰 선 메모리 카메라...
오랜만에 들어보니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그립감이 꽤 좋았다.
어디든 여행을 가면 내가 카메라를 챙기고 친구들과의 모임엔 항상 내가 찍사였기 때문에 카메라엔 당연히 욕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수동 카메라에서 디카를 거쳐 작은 디쎄랄 카메라까지 카메라의 변천사도 , 남아 있는 앨범들도 모두 추억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크다. 그런데 언젠가부턴 카메라를 챙기는 일상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카메라만(!) 들고 갔을 때의 아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카메라에 망원렌즈에 광각렌즈에 카메라 가방 등의 악세사리와 메모리카드, 후레쉬 등등등... 한 마디로 어깨 빠진다.
이젠 나도 카메라를 버리고 핸펀 하나로... 따라서 사진 현상도 없다. 그러니 버려지는 사진도 많고 남아 있는 사진도 드물어져서 나만의 낭만은 사라진 느낌이다. 박선아 작가는 정리도 잘하고 정리된 사진을 커~~~다란 화면으로 돌려보던데...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옛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
우리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 계셨다면 요즘의 신문물도 참 좋아하셨을 거 같다. 남아 있는 아버지 사진이 거의 없어서 너무 아쉽다. 사진은 추억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