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나는 오랫동안 앓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열이 몸속에서 타오르는 동안 내 다음번 주소지는 점점 더나무로 짠 상자가 될것 같아 보였다. 나는 처음 며칠을 위더스푼 부인 집의 2층에 있는 손님 방에서 몹시 앓으며 보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또 몇 주일이 더 지나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온 기억도, 그와 관련된 어떤 기억도 없다. 사부와 이솝이 내게 들려준 말로는, 수 아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 침대 옆에 붙어 앉아 물수건을 갈아주고, 내 목구멍으로 죽을 떠 넣어 주고, 하루에 세 번씩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의 오글랄라 드럼으로 치는 특별한 박자에 맞춰 내 침대 주위를 돌며 인디언들의 주신(主神)에게 나를 너그러이 굽어살펴 다시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문을 영창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해가 되었을 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진찰하기 위해 의 - P47
사를 부른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내가 정신이 들어 완전히 회복된 것을 생각한다면, 나를 살려낸 것은 그녀의 비술(術)일수도 있다. - P48
누구도 내 병에 의학적인 이름을 갖다 붙이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그 병이 몇 시간씩 눈보라 속을 헤맨 탓에 생겨난 것 같았지만 사부는 그 설명을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일축해버렸다. 그의 말로는 내 병이 <존재의 아픔>이라는 것으로, 조만간 나를 덮치게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내가 다음 단계의 훈련으로 진입할 수 있으려면 내 몸에서 독이 제거되어야 했는데, 위치토에서 맞닥뜨린 그 뜻밖의 사건 덕분에 6개월 내지 8개월가량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심한 충격을 받아 복종을 하게 되었으며,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기가 꺾이자, 그 정신적 충격이 병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내게서 원한이 사라졌고, 죽음 직전의 악몽에서깨어났을 때는 내 속에 있던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 P48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첫 번째 단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밖에 다른 일들도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며칠 뒤 내 열이 다시 치솟았을 때 일어났다. 어느 날 이른 오후, 잠을 깨고 보니 방안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침실용 변기를 써볼 셈으로 침대에서막 빠져나오려는 참이었는데, 베개에서 귀를 떼자 문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후디 사부와 이솝이 복도에 서서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슨 얘기인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이솝이 감히 사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나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는 얘길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 온갖 못된 짓과 불쾌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이솝이 내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자신이 죽도록 부끄러웠다. 사부님은 저 애의 영혼을 망가뜨렸어요.」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이제 저 아이는 죽음을 맞는 자리에 누워 있어요. 그건 공평하지 못해요. 나는 저 애가 걸핏하면 말썽을 피우는 개구쟁이라는 건 알지만 저 애의 마음속에는 단순한 반항 이상의 것이있어요. 나는 그걸 느꼈고,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 또 설령 내 말이 틀렸더라도 저 애가 사부님한테서 받고 있는 것 같은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어요. 누구도 그런 대우를 받아선 안 돼요.」 - P49
나는 누가 그처럼 내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정말로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이솝의 얘기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저녁, 내가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을 때 예후디 사부가 살며시 방으로 들어오더니 땀으로 흠뻑 젖은 내 침대가에 앉아 내 손을 잡아 쥐었다. 나는 그가 거기에 있을 동안 내내 잠이 들은 척 눈을 감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월트.」 그가 마치 혼잣말을 하듯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너는강인한 녀석이고 아직은 죽을 때가 되지 않았어. 우리 앞에는 네가 상상도 못 할 굉장한 일, 놀라운 일들이 놓여 있으니까. 너는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건 단지 네가 대단한 녀석이라서 이런 시련을 견딜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너한테는 타고난 소질이 있다. 나는 그 재능을 전에 누가 펼쳤던 것보다도 더 멀리까지 펼쳐줄거다. 내 말 듣고 있니, 월트? 나는 너한테 죽지 말라고 하고 있다. 나한테는 네가꼭 있어야 하고 아직은 나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있어.」 - P50
내가 상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재난에 가까운 두 가지 사건을 겪어야 했다. 12월 초의 어느 날, 이솝이 잘 따지지 않는 복숭아통조림을 따려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그 상처는 처음엔 얼마 안 가서 곧 나을 단순한 찰과상, 아무것도 아닌 상처로 보였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듯 딱정이가 앉는 대신 생인손이 되어 엄청나게 부어올랐고, 사흘째가 되자 불쌍한 이솝은 열이 몹시 올라 침대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후디 사부가 집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다른 재능 외에 의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P77
그녀는 너무 인정이 많은 간호사였다. 얼마쯤 뒤에는 사부가 그녀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흐트러져서 그녀를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끓인 물이 한 양동이 더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금 당장 해요. 빨리 서둘러서.」 그것은 단지 그녀를 몰아내기 위한 핑계였다. 나는 수 아주머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내 옆을 지나 무턱대고 계단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과 그다음에 벌어진 일을 모두 똑똑히 다 보았다. 그녀가 첫 번째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사이 무릎이 꺾이고, 다음에는 그녀의 육중한 몸이 곤두박질쳐서 쿵쿵 계단을 굴러 내려가 바닥에 부딪칠 때까지. 그녀는 온 집안을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래층 바닥으로 나가떨어졌고, 뒤이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왼쪽 다리를 움켜쥐고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이 등신같은 늙은 년! 그녀가 자기에게 욕을 해댔다. 이 멍청하고 모자란 늙은 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망할 놈의 다리를 분질렀어.」 - P80
이윽고 나는 평온할 정도로까지 잠잠해졌고, 조금씩 조금씩 어떤 느낌이 내 몸을 타고 퍼져 나가 근육들 사이에서 발산되며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으로스며 나왔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가슴속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리고 몸에서도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에 초연하고 무관심한 채 잔잔한 무감각의 파도 위에 떠 있었다. - P82
내가 처음으로 그 일을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최소한의 인식도 없이, 내 몸이 아주 천천히 바닥에서 떠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그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너무도 절묘하리만큼 가벼워서 나는 눈을 뜨고 나서야 내 팔다리가 어디에도 닿지 않고 허공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닥에서 높이 떠 있지는 않았지만 ㅡ 기껏해야 2, 3센티쯤 ㅡ 나는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밤하늘의 달처럼 고요히 떠오른 채 허파 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공기의 흐름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엔가 나는 떠올랐을 때와 똑같이 느리고 가볍게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때쯤에는 내게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갔고 내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그리고 방금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나는 세상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꿈도 없는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 P83
나를 잠에서 깨운 것은 말소리와 나무 바닥에 끌리는 신발 소리였다. 눈을 뜨자 예후디 사부가 입고 있는 검은 바지의 왼쪽가랑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 녀석아.」 그가 발로 나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선잠을 잔 거냐?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 한잠 자기에는 썩 쓸 만한 곳은 아닌데.」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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