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법 배우기 ㅡ《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귄

게센의 종교인 한다라교(에스트라벤도신자이다)의 핵심 교리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해서는 안 될 질문이 뭔지 판단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의중요성을 아는 것이다. 이는 상대가 어떤성인지 알 수 없고, 알려 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아는 게센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철학일 것이다. (137/211)

서서히 게센인들의 철학을 이해하게된 겐리는 마침내 임무에 성공하고 몇 년만에 동료들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는다.
그는 남성과 여성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동료들의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다가 중성적인 게센인들을 보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는 누구의 편인지 구분 짓는 것은 실로 고통스러우며 의미 없는 행동이자 사고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결말이 아닐까 싶다. (137/211)

이 결말을 보며 완경후 한동안 방황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나는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그 시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을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소위 ‘여성성‘이 더 강조되는 옷차림을 하고, 좀 더 ‘여성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깨닫게 됐다. 내 모습이, 내 태도가 세상이 정해놓은 여자라는 틀에 가까운지, 남자라는 틀에 가까운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완경이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여자로 태어났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고, 세상이 여자인 나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 (138/211)

해야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라는 것이 점점 깎여나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축소되고 밋밋해지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 순간 마침내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여성스러운지, 남성스러운지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고, 전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보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사안이 있을 때는 목소리를 높였고, 전보다 더 호탕하게 웃었으며,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힘과 자유를 가진 기분이 들었다. (139/211)

*지구인과도 소통이 안돼ㅡ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 코니 윌리스 지음

그러나 오프라인, 즉 현실에 생생히 존재하며 살아 숨 쉬는 인간을 그렇게 쉽게 삭제하거나 차단할 순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 
남자들이 모여 노래방의 마이크를 독점하듯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모임에 더는 나가지 않기로 했다고 앞에 썼지만, 실은 아주 최근에 그와 비슷한 어떤 모임에 나갔다가 색다른 경험을했다.
  거기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고(여자 다섯, 남자 셋)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언권을 독점하려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누군가가(사실 여자들이 돌아가며) 유머러스하게 발언을 제지해서그의 입을 막았다. (207/211)

그 모습을 보며 신산한 충격을 받았다. 사실 그렇게 ‘나 홀로 잘났소‘ 스피커가 모임에서 제지를 당하는 상황이 최근 몇년 사이에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피부로 느끼긴 했다. 
그건 아마도 더는 그런 식으로 소통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발언의 기회는 공평하고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주로 여성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파티는 즐거웠고 알찼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정말 외계인 같은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208/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