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


‘됐어.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 이제 한번 볼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어두웠던 방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꽃무늬 벽지, 반들반들한 가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한 세상이 돌아왔다. 그러나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여자는 얼른 거울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비스듬히 거울을 보니 발코니 뒤편의 풍경과 방 일부가 보였다. 그러나 차마 자신의 모습을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빌린 옷을 입고 좋아하다니, 꼴불견 아닌가? 남들뿐아니라 나 자신도 속이는 셈이잖아?‘
엄격한 재판관을 현혹해서 관대한 판결을 얻어내려는죄인처럼 여자는 천천히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눈을 내리깔고, 두려운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또다시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서둘러야 해!‘  - P92

여자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처럼 심호흡을하고 용기를 내면서 결심한 듯 눈을 떴다. 거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넘어질 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게 누구야? 이 날씬하고 우아한 여자는 누구지?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입은 반쯤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네. 이게 내모습이라고? 말도 안 돼!‘ - P92

여자는 말을 잃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오며 저절로 입술이 움직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거울에 비친 여자의 입술도 움직였다.
여자는 놀라 호흡을 가다듬었다. 꿈에서조차 이토록 젊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자신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선이 분명한 붉은 입술, 섬세한 눈썹, 물결치는 금발 아래로 훤하게 드러난 목이 돋보였다. 하늘하늘한 드레스에 감춰진 맨살이 새롭게 느껴졌다. 여자는 거울에 비친 여자가 정말 자신인지 확인하려고 거울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서거나 갑자기 움직이면 그 황홀한 모습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서저절로 미간이 떨렸다.
‘이건 현실이 아냐.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는없어. 이것이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 P93

 그녀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생각을 멈추었다.
그 순간, 거울 속 여자가 크리스티네를 향해 웃었다. 처음에는 살며시, 그다음엔 활짝 눈을 끄게 뜨고 자랑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나는 참 예쁜 여자야.‘
자기 몸에 감탄하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몸에 꼭 맞는 실크 드레스 밑에서 움직이는 가슴, 날씬하면서 여성스러운 곡선을 드러내는 몸매, 편안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어깨……. 여자는 새롭게 변신한 몸의 움직임을 보고 싶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천천히 옆으로 돌아보았다. - P93

그리고 다시 한번 자랑스러움과 기쁨에 들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조금더 대담하게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다시 한번 우아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빙 돌리며 빠르게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울 속여자가 또 한 번 미소 지었다.
‘아! 정말 날씬하고, 우아해 보인다!‘ - P94

‘좋아, 아주 좋아.‘
거울 속 여자가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여자는 황급히 복도를 뛰어가 이모의 방으로 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시원한 실크 드레스의 촉감이 더욱 산뜻하게 느껴졌다. 바람에 실려 떠가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가볍게 날아갈 듯 움직여본 것은 어린 시절뿐이었다.
드디어 여자는 변신에 도취하기 시작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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