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와 원숭이왕>
아래 하(下)에 한획만 더하면 아닐 불(不)이 되는구나! 전호리 그 사람이 참 ... ㅎㅎㅎ

삼리촌(三里村) 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통나무집. 번잡한 마을 사람들의 민가와 북적이는 사당에서 멀리 떨어진, 수련 잎과 분홍 연꽃과 즐겁게 노니는 잉어가 가득한 시원한 연못의 가장자리에서 있는 이 통나무집은, 근처의 번화한 도시 양주(揚州)에 사는 방탕한 시인과 비단옷을 입은 그의 애인에게는 운치 있는 여름 별장이 될만한 곳이었다. - P433

그런데 아뿔싸, 혹시 이통나무집을 눈여겨본 문인이 있었다면분명 실망했을 텐데 왜냐하면, 다 무너져 가는 집이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대나무 숲은 손질이 안 되어 엉망으로 자라 있었다. 나무 벽은 뒤틀리고 썩어서 곳곳이 구멍투성이였다. 짚을 엮어 인 지붕은 높이가 들쑥날쑥해서 먼저 얹은 켜가 나중에 얹은 켜의 구멍으로비죽 솟은 모양새가…… - P434

…실은 이 통나무집의 주인이자 유일한 거주자인 전호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전은 오십대였지만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깡마른 체격에 낯빛은 누렇게 떴고 변발은 숱이 적어서 돼지 꼬리처럼 가늘었으며, 날숨에서는 걸핏하면 가장 싼술과 그보다 더 싼 차의 냄새가 풍겼다. 전은 어릴 적에 당한 사고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절었는데, 지팡이를 짚는 대신 발을 끌며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겉옷은 온 사방에 기운 자국이 가득했으나 그래 봤자 수없이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속옷을 감출 수는 없었다. - P434

대다수 마을 사람과 달리 전호리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사람들이 아는 한 그는 과거시험의 첫 번째 단계조차 합격한 적이 없었다. 이따금 전은 다관에 들러 마을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 주거나 관청의 공지를 읽어 주고 그 대가로 닭 반 마리나 만두 한 접시를 대접받았다.
그러나 전호리가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은 따로 있었다. - P434

안나가 볼 건가? 원숭이 왕이 물었다.
전호리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원숭이 왕은 그의 꿈속에 나타나곤 했고, 깨어 있을 때면 머릿속에서 말을 걸기도 했다. 남들은 관세음보살이나 부처에게 기도를 드렸지만 전은 원숭이 왕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원숭이 왕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요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볼일인지 몰라도 기다리라고 해. 전호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 고객 같은데. - P435

도움을 구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호리는 송사, 즉 ‘소송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휘두르는 지현이나 향신 같은 이들에게 전은 송곤(訟棍), 즉 ‘소송 거간꾼‘이었다. - P439

다도를 즐기는 문인과 은자(銀子) 쓰다듬기를 즐기는 상인 같은 무리는 무지렁이 농민들이 민원을 작성하고 소송 전략을 짜고 증언과 심문에 대비하도록 돕는다는 이유로 전호리를 경멸했다. 
어쨌거나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이웃끼리 소송을 하는 것은 무도(無道)한 짓이었으므로, 분쟁이란 유가(儒家)의 지식을 갖춘 향신이 조정해 줄 오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 같은 자가 감히 교활한 농민들을 부추겨 윗사람을 법정으로 끌고 가서 예(禮)에 기반한 계급 질서를 뒤집어엎으려 하지 않는가! 대청율례」에 따르면 소송 원조, 소송 방조, 소송 교사, 궤변을 포함한 변론・・・・・・ 하여튼 전이 하는 짓은 뭐든 다 범죄였다. - P439

그러나 전호리는 아문이 사실은 복잡한 기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않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양자강 유역 곳곳에 있는 수차(水車)가 그러하듯이, 복잡한 기계에는 틀과 톱니와 지렛대가 있었다. 영리한 사람은 이곳저곳을 슬쩍 누르고 당겨서 이런저런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아무리 전을 싫어한다 해도 문인과 상인 역시 가끔은 전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런 경우에는 보수 또한 두둑했다. - P439

"됐다, 넘어가자." 지현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씨가 말하는 불의한 것이란 게 도대체 뭐냐? 계약서는 사촌 해 씨에게 낭독시켜 이미 들어 보았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불을 보듯자명하거늘."
"안타깝게도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청컨대 계약서를 가져오게 하시어 다시 살펴보도록 해 주십시오." - P443

무슨 계획이 있는 거지, 그렇지? 원숭이 왕이 물었다.
실은 아무 계획도 없어. 그냥 시간을 버는 거야.
음. 나는 적의 무기로 적을 공격하는 게 언제나 즐거웠다네. 내가나타 태자와 싸울 때 놈이 쓰던 화륜(火輪)으로 화상을 입혔다는 얘기, 자네한테 했던가?
전호리는 겉옷 소매 속으로 슬며시 손을 집어넣었다. 평소에 필기도구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 P443

계약서의 법률 조항은 길고도 복잡했지만, 핵심 문구는 단 여덟자에 지나지 않았다.
上賣莊稼 下賣田地
"계약 조건은 채무자가 담보물 환수권을 채권자에게 매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구에 따르면 과부 이 씨는 사촌에게 ‘위의 작물과 아래의 토지를 판다‘라고 약속한 셈이었다.
"흥미롭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전호리는 계약서를 든 채로 머리를 연신 끄덕거렸다. 역 지현은자신을 낚으려는 수작인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무
"대관절 뭐가 그리 흥미롭다는 게냐?"
"아아, 진실을 티 없는 거울처럼 밝게 비추시는 영명하신 지현 나리, 이 계약서는 나리께서 직접 읽어 보셔야 합니다." - P444

전호리는 계약서를 든 채로 머리를 연신 끄덕거렸다. 역 지현은자신을 낚으려는 수작인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대관절 뭐가 그리 흥미롭다는 게냐?"
"아아, 진실을 티 없는 거울처럼 밝게 비추시는 영명하신 지현 나리, 이 계약서는 나리께서 직접 읽어 보셔야 합니다."
어리둥절해진 역 지현은 아역에게 계약서를 가져오게 했다. 잠시후, 지현의 눈은 튀어나올 듯이 동그래졌다. 계약서에, 검고 또렷한 글씨로, 매각의 핵심 조건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上賣莊稼, 不賣田地
"위의 작물은 팔되, 토지는 팔지 않는다." 지현이 중얼거렸다.
어찌된 사태인지는 명확했다. 계약서는 해 씨의 주장과 일치하지않았다. 해 씨가 지닌 권리는 작물에 대한 것뿐, 토지 자체는 아니었다. 역 지현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이 민망한 상황에서 분통을 터뜨릴 표적이 필요했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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