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중 <모노노아와레>
ㅡ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
모노노아와레!
우주선의 찢어진 돛을 수리하고 귀환할 산소가 바닥난 채 우주 저 멀리로 추락해가는 히로토.
‘돌 하나하나는 영웅이 아니야, 하지만 모든 돌이 힘을 합치면 영웅적인 일을 할 수 있어.‘
어딘가 비장미가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나지막하게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
˝산책하기 좋은 날이구나. 그렇지?˝

"히로토,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이란다. 지금 네 마음을 차지한그 기분, 그건 ‘모노노아와레‘라는 거야.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이지. 태양, 민들레, 매미, 해머,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인간은 누구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라는 물리학자가 정리한 방정식에 지배 당한단다. 그래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짧은 패턴일 뿐이야. 그 수명이 1초든, 아니면 100억 년이든." - P388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끗한 거리를, 천천히 거니는 사람들을, 풀밭을, 저녁놀을. 그러자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아빠와 나는 계속 걸었다. 우리 둘의 그림자가 살짝 겹쳐졌다. 바로 머리 위의 하늘에 해머가 걸려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무섭지 않았다. - P388
막 너머의 별들은 다시 봉인된다. 돛의 표면은 완벽한 거울이다. "항로를 수정하라. 수선 작업 완료"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작업 완료 확인" 해밀턴 박사가 말한다. 슬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남자의 목소리로. "일단 너부터 돌아와야지." 민디 "지금 항로를 수정하면 넌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잖아." "괜찮아, 베이비." 나는 마이크에 대고 속삭인다. "난 안 돌아가. 연료가 부족하거든." "우리가 구하러 갈게!" "이 버팀대 사이를 나만큼 빨리 이동할 순 없어." 나는 민디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이 패턴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도착할 때쯤이면 난 이미 산소가 다 떨어졌을 거야." - P400
나는 민디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 슬픈 얘기는 그만하자. 사랑해." 그런 다음 무전을 끄고 우주로 나아간다.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져 쓸데없이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추락한다. 우산 같은 태양 돛 아래로 멀리, 멀리. 내가 지켜보는 동안 태양 돛은 방향을 틀고, 그 너머의 별들은 위용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이제 뒤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태양은 뜨지도 지지도 않는 여러 별 가운데 하나일 뿐. 나는 그 별들 사이에 둥둥 떠 있다. 혼자서, 동시에 그들과 함께. 새끼 고양이의 혀가 내 마음은ㆍ 할짝거린다. - P401
"바둑에도 영웅이 있네요."보비의 목소리. 민디는 내가 영웅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단지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장소에 있었던 사람일 뿐이다. 해밀턴 박사는 호프풀호를 설계했으니 그 역시 영웅이다. 민디는 내가 잠들지 않도록 해 주었으니 역시 영웅이다. 내가 살아남도록 기꺼이 나를 보내 준 내 어머니도 영웅이다. 내가 옳은 일을 할 방법을 가르쳐 준 내 아버지도영웅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 P401
"산책하기 좋은 날이구나. 그렇지?" 아빠가 말한다. 이윽고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걷는다. 지나가면서 본 풀잎 한장, 이슬 한 방울, 저무는 해의 힘없는 햇살 한 줄기까지, 기억할 수 있도록, 한없이 고운 그 모두를.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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