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나, 어떻게 할 참이오? 촛불이 다 타고 다시 어둠이 밀려오도록 여기서 서로 이야기를 해 주고 앉아 있을 수는 없소."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난 무서워요." 그녀는 돌궤짝 위에 몸을 꼿꼿이 펴고 앉아서 한 손으로 주먹 쥔 다른 손을 꼭 싸쥐었다. 그녀의 음성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처럼 컸다. "난 어둠이 무서워요." 그가 부드럽게 응답했다.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해요. 나를 여기 놔두고 떠날 수도 있소. 문을 잠그고 제단으로 올라가 당신 주인님들에게 나를 바치는거요. 그런 다음 무녀 코실에게 가서 화해를 하죠…………. 그러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요. 그러지 않으려면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나와 함께 말이오. 무덤을 떠나고 아투안을 떠나서 나와 함께 바다를 건너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건 이야기의 시작일 거요. 당신은 아르하든지 아니면 테나여야 하오. 둘 다일 수는 없소." - P194
그 깊숙한 음성은 다정하고도 확고했다. 그녀는 그림자들 너머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험하고 흉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잔인함이나 기만이 없었다. "내가 암흑의 존재들을 섬기길 그만둔다면 그들이 날 죽일거예요. 이곳을 떠나면 난 죽어요." "당신은 죽지 않아요. 아르하가 죽겠지요." "난 못해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거요, 테나 건너기 전에 보이는 것만큼 어려운 다리는 아니라오." "그들이 우릴 나가게 두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소. 당신은 길을 알고 내겐 마법이 있소. 그리고 우리 사이엔 ・・・……." 그가 말을 끊었다. - P195
"우리에겐 에레삭베의 고리가 있죠." "그래요, 그게 있소. 하지만 난 우리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것을 생각했소. 신뢰라고 합시다, 신뢰도 그것의 이름이니까. 그것은 아주 위대한 것이오. 우리가 따로따로 혼자일 때는 약할지라도 우리 사이에 그것이 있는 이상 우리는 강해요. 암흑의 힘보다도 강하다오." - P195
그의 두 눈이 흉터 있는 얼굴에서 맑고 환하게 빛났다. "들어 봐요, 테나! 난 이곳에 도둑으로 왔소. 당신에 대항하여 무장한 적으로 온거요. 그런데 당신은 내게 자비를 베풀고 나를 신뢰해 주었소. 나 역시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믿었다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아름다움을 본 그때, 무덤돌들 지하에서 한순간 마주보았던 그때부터 말이오. 당신은 나를 신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소. 나는 그에 답한 게 없지요. 당신께 드려 마땅할 것을 드리겠소. 내 진짜 이름은 게드요. 받아 간직해 주시오." - P196
그는 일어서서 구멍이 뚫리고 조각이 새겨진 반쪽짜리 고리를 내밀었다. "고리를 맞춥시다." 그녀는 그의 손에서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목에 걸고있던 은사슬을 벗어 나머지 반쪽을 뺐다. 두 개의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놓자 쪼개진 가장자리가 서로 잇닿아 고리는 완전해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들지 않고 말했다. "당신과 가겠어요." - P196
"당신이 걸고 있는 구속에 두고, 나와 함께 갈 것을 청하오, 테나." 그녀는 팔에 찬 은고리에 어린 별빛을 보았고, 거기 눈길을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곤 그에게 손을 맡기고 함께움직였다. 달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걸어서 언덕을 내려갔다. 등 뒤 바위틈에 벌어진 검은 아가리로부터 신음하듯 울부짖는 길고 긴 증오와 비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위로는 돌들이무너져 내렸다. 땅이 흔들렸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손목 위에 흐르는 별빛의 반짝임에 눈길을 못 박고있었다. 그들은 묘역 서쪽의 어둑신한 골짜기에 접어들었고, 이제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게드가 그녀를 돌려세웠다. "봐요." - P211
그녀는 돌아섰고 보았다. 그들은 골짜기를 건너질러서 이제 무덤돌들과 같은 높이에 올라와 있었다. 금강석의 대공동과 무덤들 위로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아홉 개의 거대한 돌기둥들. 그중 곧추선 기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돌연 꿈틀하더니 배의 돛대처럼 서서히 기울었다. 그중 하나는 홱 뒤틀리며더 높이 솟구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경련이 기둥을 타고 흘렀고 그것은 쓰러져 내렸다. 또 하나가 쓰러지며 앞서 쓰러진 돌을 엇갈리게 덮쳤다. - P212
"난 한번도 마난에게 상냥하게 대해 준 적이 없어요. 난 해브너로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가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오지 않는 섬을 찾아 줘요, 그리고 날 내려 주고 떠나 버려요. 악은 보응을 받아야 해요. 난 자유롭지 못해요." 바다 안개로 흐릿해진 부드러운 불빛이 그들 사이에서 일렁이며 빛났다.
"들어요, 테나. 내말에 귀를 기울여 봐요. 당신은 악을 담은그릇이었소. 그 악은 쏟아버렸어요. 이제 된 거요. 그건 제 무덤에 파묻힌 거요. 당신은 결코 잔인함과 암흑을 위해 만들어지지않았어요. 당신은 빛을 품게끔 만들어진 그릇이오. 등잔이 그안에 빛을 품고 또 그 빛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말이오. 난 불이당겨지지 않은 등잔을 발견했소. 그걸 어느 무인도에다 두고 가는 짓은 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 한다면 뭔가를 찾아냈다가 그냥 내던져 버리는 꼴이오. 난 당신을 해브너로 데리고 가서 어스시의 공경들에게 말할 거요. ‘보십시오! 암흑 속에서 빛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그 빛입니다. 그녀로 인하여 해묵은악령이 무로 돌아갔지요. 그녀 덕분에 나는 무덤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녀로 인하여 깨어졌던 것이 온전해지고, 증오가 있던 곳에 평화가 있게 되었습니다.‘하고 말이오." - P249
그녀는 괴롭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럴 순 없어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 공경들과 부유한 귀인들로부터 떠나게 해주리다. 거기에 당신 자리가 없다는 말은 옳은 말이니까요. 당신은 너무도 젊고 또 너무나 현명하오. 난 당신을 내 고향, 내가태어난 곤트 땅으로 데려갈 거요. 나의 옛 스승 오지언께로 말이오. 그분은 이제 아주 나이가 드셨소. 진정 위대한 현자이시며 잔잔한 마음을 가진 분이지요. 사람들은 그분을 ‘조용한 사람‘이라 부르오. 그분은 르 알비의 ‘큰벼랑‘ 위에 있는 작은 집에 사시오. 바다 위로 높이 솟은 낭떠러지지요. 그분은 염소 몇마리와 텃밭을 돌보고 있소. 그리고 가을이 되면 혼자서 섬이곳저곳을 거닐며 숲속과 산비탈과 강물 흐르는 골짜기를 다니신다오. 나도 한때 거기서 그분과 살았더랬소. 내가 지금 당신보다 더 어렸을 때의 일이오. 오래 살진 않았지요, 그만 한 분별이 없었던 거요. 난 악을 찾아 나섰고 결국 충분할 만큼 찾아냈소・・・・……. 하지만 당신은 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중이고, 당신만의 길을 발견할 때까지 한동안 조용히 있기를 원할 참이오. 그곳에서 친절과 고요를 찾게 될 거요. 테나. 그곳에서 등잔은한동안 바람을 피해 타오르게 될 거요. 그렇게 하겠소?" - P250
바다 안개가 그들의 얼굴 사이로 흐릿하게 흘렀다. 배는 긴물결 위를 가볍게 떠갔다. 주위에는 밤이, 아래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러겠어요." 그녀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말했다. "아아, 더 일찍이라면 좋을걸………. 지금 그리로 갈 수 있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꼬마 아가씨." "당신도 그리로 올 건가요, 언젠가는?"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갈 거요." 빛이 꺼져 갔다.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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