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시가 활기 없는 마차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사람들이 음악 아카데미에서 소프라노 가수 크리스티나 닐슨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벽에 걸린 허드슨 리버화파의 풍경화 속 노을빛을 따사로이 쪼이던 시절이었다. 그시절, 쇼윈도가 하나밖에 없어 사람들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던 조그마한 가게 하나가 스타이브센트 광장 근처 여성 고객들에게 꽤 알려져 사랑을 받았다. - P9
가게는 아주 작았고,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뒷골목의 누추한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유리창 뒤에 전시된 갖가지 물건과 그 위에 걸린 아주 단순한 간판(검은 바탕에 얼룩덜룩한 금색 글씨로 "버너 자매"라고 쓰여 있을 뿐이었다)만 가지고선 도대체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 P10
길거리의 한중간은 이따금 우울한 풍경으로 가득 찼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 슬픈 구간은 먼지와 지푸라기와 구겨진 종이들이 바람에 날려 소용돌이치며 풀썩이곤 했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교통이 활발해질 때쯤이면 여기저기 금이 간 길바닥에는 알록달록한 광고 전단과 토마토 깡통의 뚜껑과 오래된 신발과 담배꽁초와 바나나 껍질들이 모자이크를 이루었고, 날씨 상태에 따라 진흙으로 바닥에 들러붙거나 풀풀 날리는 먼지로 뒤덮였다. - P11
쓰레기들을 바라보며 우울해진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버너 자매 가게의 창문 너머 광경이었다. 가게의 창유리는 항상 깨끗이 닦여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 전시된 조화와비늘 모양의 플란넬 천으로 만든 밴드들과 철사로 된 모자 틀과 수제 통조림들은 비록 박물관 진열장에서 아주 오래 머문 것처럼 가장자리가 회색으로 희미하게 바랬지만, 그 뒤편으로 보이는 잘 정돈된 계산대와 희게 칠한 벽면이 가게 부근의 음산함과 대조되어 보는 이의 기분이 상쾌했다. - P11
버너 자매는 그 깔끔한 가게가 자랑스러웠고 소소한 돈벌이에 만족했다. 처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데다 일찍이 품었던 야망보다 훨씬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적어도 가게 수입으로 임대료를 내고 빚 없이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 높이 솟구치던희망은 꺾인 지 이미 오래됐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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