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때 울프가 지닌 천재성의 일면은바로 그런 알지 못함, 즉 소극적 능력이었다. 언젠가 하와이의 어느 식물학자 이야기를들었다. 그는 새로운 종을 찾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가 밝힌 요령은 밀림에서 길을 잃는 것, 자신이 아는 지식과 방법을 넘어서는 것, 경험이 지식을 압도하도록 허락하는 것, 계획이 아니라 현실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울프는 정신과 다리가 둘 다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회하는 산책을 유용하게 활용했을 뿐 아니라 글에서도 칭송했다. 그녀가 1930년에 쓴 근사한 에세이[ 거리 떠돌기: 런던 모험(StreetHaunting: A London Adventure)」은 초기의 여느 에세이들처럼 어조는 가볍고 경쾌하지만 사실은 깊은 어둠을 여행하는 글이다. (172/305)
그 글에 묘사된 산책은 실제 일화를 픽션화한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지어낸 것일 수도있다. 어느 겨울날 해거름녘에 그녀가 연필을 사기 위해서 런던 거리로 나선다는 설정인데, 사실 그 설정은 어둠을, 방랑을, 창조성을, 정체성의 소멸을, 육체가 일상적인 경로를 거니는 동안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대단한 모험을 경험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않는다. 울프는 이렇게 썼다. "저녁시간 또한 우리에게 어둠과 램프 불빛이 제공하는무책임함을 선사한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자신이 아니다. 날이 좋은 저녁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집을 나설 때, 우리는 친구들이아는 우리의 자아를 벗어둔 채 익명의 보행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화국 군대의 일부가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을 맛본 뒤라서, 그들과의 사교는 참으로 기껍다." 울프 (173/305)
울프가 여기에서 묘사한 사회는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해방시키는 사회, 낯선 사람들의 사회, 거리들의 공화국, 대도시가 발명한 익명성과 자유의 경험이다. (174/305)
성찰은 대개 고독한 실내활동으로 묘사되곤 한다. 독방에 든 수도사, 책상에 앉은 작가. 울프는 여기에 반대하면서 "집에서는 우리가 옛 경험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체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물체들을 묘사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문이 닫히면, 그런 것들은 사라진다. 우리 영혼이 자신을 담아두기 위해서, 남들과는 다른 형태를 스스로 빚어내기 위해서 분비한 껍데기와도 같은 외피가 갈라지며, 주름지고 거친 그 껍데기 중심에 진주알과도 같은 지각만이, 하나의 거대한 눈만이 남는다. 겨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174/305)
거리를 걷는 것은 사회에 관여하는 행위일 수 있으며, 봉기나 시위나 혁명에서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걸을 때는 정치적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또한 걷기는 몽상과 주관성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 걷기는 바깥세상의 자극과 방해가 내면에서 흐르는 이미지나 욕망(그리고 두려움)과 함께 연주하는 이중주이다. 생각은 때로 야외활동, 육체적인 활동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훼방받지 않는 집중이 아니라 가벼운 주의산만이 상상력을 추동하곤 한다. 그럴 때 생각은 우회로로 간다. 곧 (175/305)
곧 바로는 가닿을 수 없는 장소를 향하여 슬렁슬렁 에둘러 간다. 울프가 「거리 떠돌기」에서 묘사한 상상의 산책은 오락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울프는 실제로 그런 산책의 와중에 『등대로』를 구상했으며, 책상에 앉은 채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창작을 북돋웠다. 창조작업이란 무릇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법이다. 배회할 공간이 필요하고, 일정과 체계는 거부된다. 그 방식은 복제 가능한 공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176/305)
몇몇 구체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했다는점에서, 울프는 혁명가였다. (그녀에게도 물론 자신이 속한 계급, 장소, 시대에서 비롯한 결함과 맹점이 있었고, 어떤 측면에서 그녀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바라볼 줄 알았음에도 전부 다 넘어서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후세대가 어쩌면 비난할 수도,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맹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꿈꾼 해방은 또한 내면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인 해방이었다. (187/305)
내 친구 칩 워드(ChipWard)는 "계량 가능한 것의 폭압"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측정될 수 없는 것에 거의 언제나 우선한다는 뜻이다. 사익이 공익에, 속도와 효율이 즐거움과품질에, 공리주의가 미스터리와 의미에 우선한다. 사실 우리의 생존에는, 또한 우리의 생존 이상의 차원에는, 또한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모종의 목적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문명이 간직할 필요가 있는 다른 생명들에는 후자가 훨씬 더 유용한데도 말이다. (188/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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