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기관차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두들 조금씩 움직이고 걷기 시작했다. 자리빠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서 그때까지보다도 더 큰 소리로 흐느꼈다. 우꾸발라도 그녀와 함께 울고 있었다. 기차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별의 순간도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차갑게 휘몰아치는 짙은 안개를 꿰뚫으며 헤드라이트 불빛과 더불어 무시무시하게 덜컹대는 시커멓고 거대한 물체가 다가왔다. (540/1054)
예지게이와 아부딸리쁘는 그런 와중에서도마지막 포옹을 할 수 있었다. 한 1초쯤 여위고거칠어진 뺨을 맞대는 사이 그들의 마음으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오갔다. 「애들한테 바다 얘기를 해주세요!」 아부딸리쁘가 속삭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지게이는그의 말뜻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는 자기의아이들에게 아랄 해에 대한 얘기를 해주라고부탁한 것이었다. 「그만! 이리 와요! 빨리 와서 올라타요!」그들은 강제로 떼내어졌다. (545/1054)
보란리 사람들은 문이 꼭꼭 처닫힌 화차 옆을 따라 걸으면서 떠나가는 열차를 뒤쫓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꾸발라가 맨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자리빠를 붙들어 세워 서로의 가슴이 미어져라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다울, 여기서 그대로 있어라! 여기서 네 엄마 손 꼭 쥐고 있어!」 그녀가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며 굴러가는 바퀴들의 소음이 무색할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예지게이는 에르메끄의 손을 잡아쥔 채 여전히 기차 옆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화차가 지나쳐 간 다음에야 그는 멈춰 섰다. 기차는 제 갈 길로 떠나갔고 바퀴 소리가 사라지면서 불빛들도 천천히 흐릿해져 갔다. 마침내, 떠나가는 기관차에서 길게 뽑아내는 기적 소리가 울렸고 그제야 예지게이는 돌아섰다. 한참 동안이나 그는 어떻게도 우는아이를 달랠 길이 없었다. (548/1054)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강대국을하나로 묶었던 요인 - 데미우르고스 계획 -이 이제 와서는 외계 문명의 발견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들과 비교해 본다면 하찮은 것으로 후퇴해 버린 것이었다.
위원회의 위원들은 한가지 사실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발견이 세계적인 협조 체계와 인류가 지금까지 배워 온 모든 것, 말하자면 이제껏 전해내려온 모든 문화와 수세기에 걸쳐 여러 세대의 의식 속에서 발전해 온 모든 자각에 대하여지극히 중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놀랍고도 유례없는 발견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외계의 행성과 교류를 맺는, 게다가 그러는 중에 어쩌면 지구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조치를 감히 취할 수 있을 것인가? (555/1054)
이제 또다시, 역사상의 위기에는 언제나 그랬었듯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두 사회와 정치체제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 대한 고찰은 논쟁을 더욱 가열시켰다. 그리고 접근 방법에서의 의견 차이는 점점 더 타협할 수 없는 양상을 띠어 갔다. 이제 사태는, 만일 확대될 수만 있다면, 세계 대전으로 급변할지도 모르는 붕괴와 갈등을 향해 급속히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은 사태가 그처럼 발전될 경우의 섬뜩한 위험을 명심하고서 아슬아슬한 위기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556/1054)
그러나 더욱 중대한 긴장 요인은 외계 문명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일반 대중에 알려질 경우 초래될,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누구도 사태가 그렇게 발전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겨날지를 명백히 알 수 없었다....... 결국은 상식이 승리를 거두었고 양측은 엄정한 평등이라는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불가피한 타협안을 찾게 되었다. (556/1054)
우주 비행사 1-2와 2-1에게 귀관들은 지체 없이 패리티의 통신 시스템을 이용하여 현재 소위 제르자쩰리 은하계의 행성 레스나야 그루지에 가 있는 패리티 우주 비행사 1-2 및 2-1과 무선 연락을 취할 것. 귀관들은 즉시 궤도를 이탈한 두 우주 비행사에게, 그들이 발견했던 외계 문명에 관한 정보를 연구해 온 양측 위원들 간의 협정에 의거하여 옵뜨세누쁘르는 다음과 같은 번복할 수 없는 결정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릴 것. (557/1054)
(a)이전의 패리티 우주 비행사 1-2와 2-1은 세계문명에 바람직하지 못한 자들로서 지구로의 귀환은 물론 패리티 궤도 정거장으로의 귀환도 허용되지 않음.
(b) 행성 레스나야 그루지의 주민들에게, 그들과의 접촉은 여하한 형식을 취하건, 지구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관심사 및 인간사회의 특수한 발전 단계와 상충되는 관계로 거절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통보할 것.
(c) 이전의 패리티 우주 비행사 1-2와 2-1및 현재 그들과 접촉하고 있는 다른 행성의 인간들에게 지구인들과의 교신을 시도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최근에 외계인들이 트램펄린 궤도의 패리티 궤도 정거장을 방문했던 바와 같이 지구 주위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할 것. (558/1054)
상층 기류에 씻기며 지구는 정해진 궤도를따라 공전을 계속했다. 우주의 무한한 영원 속에서 지구는 마치 한 알의 모래와도 같았다. 온 우주에는 그런 모래알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인간은 오직 행성 지구에서만 존재했다. (562/1054)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알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았다. 그리고 때로 호기심이 크게 발동할 때면 어딘가 다른 행성에 자기들과 같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지를 알아내 보려고 했다. 그들은 논쟁을 벌였고, 가설을 세웠고, 달에 착륙했고, 다른 천체에 무인 탐사 위성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매번 그들은 태양계 내의 어느 천체에도 자기들과 같은 존재나 또는 비슷한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상당히 실망했다. 실로, 태양계 내에는 다른 생명의 흔적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그 의문을 망각해 버렸다. (563/1054)
"자네들한테 알려줄 아주 나쁜 소식이 있네." 그가 여지게이와 우꾸발라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아직은 애들 귀에 들어가선 안돼. 정말로 슬픈 일이 생겼네. 우리 아부딸리쁘가 죽었어!" "무슨 얘길 하는 겁니까?" 예지게이가 벌떡 일어섰다. 우꾸발라는 날카롭게 비명 소리를 냈다가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 사람이 죽어요? 죽다니요! 그 불쌍한 애들, 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우꾸발라가 목이 메어 반쯤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한탄했다. 「어떻게 죽었답니까?」 예지게이가 겁에질린 얼굴로 까잔갑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직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역으로 서류가 와 있어.」 모두들 잠잠해졌다.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우꾸발라가 머리를 감싸 쥐고 이쪽저쪽으로흔들어 대며 신음처럼 웅얼거렸다. (589/1054)
「난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예지게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걸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내가 무엇보다도 더 걱정스러워했던 거였어요. 그 사람은 그저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것, 바로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갈망이란 끔찍한 거지요. 그 사람 애들이 저희 아버지를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하는지 보십쇼.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 사람이 좀 달랐더라면....... 만약,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이 뭔가를 얻으려고 했더라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랬더라면.... 등 글쎄요, 그랬다면 아마 한두 해 동안, 아니 그 기간이 아무리 (591/1054)
으니까. 물론 그 사람도 그쯤은 알고 있었겠지만 애들을 볼 생각을 하자 심장이 견뎌 낼 수없었던 거지. 자기 애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탓에 목숨을 잃은 거야.」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한동안 자기네들이 처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리빠에게 그 소식을 어떻게 전해 줄까 궁리하고 앉아 있었지만 아무리 앞일을 생각하고 또 예견해 보려고 해도 결국은 모두 한 가지 사실로 귀착되었다. 즉, 그 가족은 이제 아버지를 잃었으며 아이들은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고 자리빠는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서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었다.(597/1054)
우꾸발라가 가장 그럴듯한 생각을 내놓았다. 「자리빠가 역으로 가서 직접 서류를 받도록 해요. 그리고 충격도 애들 앞에서가 아니라거기서 받게 하고요. 아이들에게 바로 말해 줄 (597)
지 아니면 좀 더 기다릴지는 그 여자가 결정하도록 해요 - 거기 역에서나 아니면 돌아오는길에서나 일을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이 있을때 말예요. 아마도 자리빠는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저희들 아버지를 얼마쯤 잊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할 거예요. 어느 편이 더 나을지는 말하기 어렵네요.」 「당신 말이 옳아.」 예지게이가 아내의 생각에 찬성했다. 「자리빠가 저 아이들 어머니니까 애들한테 아부딸리쁘의 죽음에 대해서 당장 얘기할 거냐 나중에 얘기할 거냐는 그 여자한테 맡기기로 하지. 나는 그럴 수가.......」 예지게이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혀가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고 목이 메어서 그는 목청을 가다듬으려고 헛기침을 했다. 그들 모두가 동의하자 우꾸발라가 좀 더 충고를 해주었다. (598/1054)
「까자께, 자리빠에게 역 사무실에 그 여자앞으로 온 편지가 있다고 그러세요. 전에 보냈던 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인데 거기 사람들이자리빠더러 직접 가지러 오랬다고, 꼭 그래야한다고 했다고요. 또 한 가지는 자리빠가 그런날 거기에 혼자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엔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이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슬플 때 가장 안 좋은 것은 혼자 있는 거예요. 그러니 예지게이 당신이 같이 가도록 해요. 이번엔 당신이 그 여자 옆에 있어 줘요. 그런 슬픈 순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당신도 역에 갈 일이 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그러세요.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같이 있으면 돼요.] (599/1054)
그렇게 결정은 되었지만 간이역장의 요청으로 기차가 설 수 있었던 것은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날은 3월 5일로 부란니 예지게이가 언제까지고 기억하게 될 날이었다. (600/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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