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철길 양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광대한 불모지ㅡ 중앙 아시아의 노란 스텝 지대, 사리-오제끼가 놓여있다.

여기서는 모든 거리가 철도로 재어진다.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경도가 정해지듯.

그리고 기차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간다.

***위의 문장이 각 장마다 반복이 되고 있다.




그러자 우리 오빠는 화가 나서 내게 이랬어요. 〈너 이 일을두고 백년은 후회할 거다, 이 바보야! 너는 결혼을 하려는 게 아니라 네 불행을 찾고 있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네 애들과 그 애들에게서 난 애들의 불행까지도! 너희들은 벌써비참해지도록 선고를 받은 거야. 만일 네가 좋아한다는 그놈이 머리가 제대로 된 놈이라면가정을 꾸리려고 할 게 아니라 목을 매달았어야지! 그러는 게 그놈에게는 제일 나아!〉라고 말예요. 하지만 우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죠.

우린 전쟁이 끝났으니까 포로로 살아남은 사람이니 전사자니 하는 걸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이 식구들이건 우리 식구들이건 모두에게서 다 멀어졌지만요. (324/1054)

이걸 생각해 보세요. 얼마 전에 우리 오빠가 내게 편지를 보냈는데 거기서 오빠는 우리가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했었다면서, (324/1054)

덧붙이기를 자기는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며아부딸리쁘 꾸찌바예프처럼 유고슬라비아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사람하고는 더더구나 상관이 없다는 거였어요!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죠. 우린 어딜 가든거기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와 있는데 이젠 더 이상 어디로 갈 데도 없어요.」그녀가 말을 끊고 침목 밑에 낀 자갈을 난폭하게 긁어냈다. 앞쪽에서 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삽과 밀차를 챙겨 가지고 선로에서 벗어나 물러섰다. (325/1054)

예지게이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 곤경의 원인은 그가 살아가는 세계인 사로제끄의 경계선 밖 저 멀리에 놓여 있었다. (325/1054)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또 그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은 거지가 아니라고 예지게이는 생각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버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아무도 그들을 가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 내일도 또 모레도.
예지게이는 그 자신에게, 그가 이 가족을 대신해서, 마치 그들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는 분노와 쓰라림에 놀랐다. 그들이 과연 그에게 누구였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건 내 일이 아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판단을 내리거나 편을 들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을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스텝 지방의 사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속이 뒤집혀야 했을까? 
(330/1054)

어째서 그가 세상일이 옳거나 옳지 못하다는 문제로 그의 양심을 괴롭혀야 했을까? 분명히, 아부딸리쁘의 곤경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부란니 예지게이보다 천 배는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사로제끄에 뚝 떨어져 있는 그보다 사리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그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평온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자리빠가 가장 염려스러웠다. 그녀의 성실함, 그녀의 자제심, 역경에 맞서 싸우는 그녀의 용기가 그를 놀라게 하고 압도했는데도, 그녀는 여린 날개를 펴서 제 둥지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는 작은 새와 같았다. (331/1054)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르고 가족을 포기하고친척들의 말을 따랐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세월의, 그 전쟁 기간 동안의 대가를 남편과 똑같이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지게이가 걱정스러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그녀
(331/1054)

와 그녀의 아이들과 그녀의 남편을 보호해 줄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예지게이에게는 그들 가족을 보란리-부란니에 정착하도록 이끈 운명을 몹시 저주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걱정을 했었을까? 그는 예전처럼 그런 일에 마음을 닫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는데도. (332/1054)

••• 새해가 다가왔다. 그때쯤 꾸찌바예프 부부는 새해맞이 나무로 파티를 열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보란리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것이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우꾸발라와 그녀의딸들은 꾸찌바예프의 바라끄 오두막으로 가서파티를 준비하고 트리를 장식하고 하면서 온종일을 보냈다. 그리고 예지게이도 일을 하러 나가기 전이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맨 처음 하는 일이 꾸찌바예프네 집에 있는 트리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트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리본들이며 집에서 만든 갖가지 장난감들로 덮였다. 그 일을 해낸 공로는 자리빠와 우꾸발라에게 돌려야 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적을만들어 냈고 그 일에 가진 재주를 다 쏟았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단순한 트리가 아니라 새해를 맞는 그들의 희망, 즉 온 마을 사람들이 바로 (480/1054)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게 해주려는 기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아부딸리쁘는 그러나 트리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지게이는처음엔 그들이 눈 장난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고 나서는 아주 흡족해했다.
검은 눈이며 석탄을 박아 만든 눈썹, 빨간 코,
웃는 입, 거기에다 머리에는 낡아 못 쓰게 된 까잔갑의 말라까이 모자까지 얹힌 거의 어른 키는 되게 커다란 그 눈사람은 간이역 앞을 지키고 서서 기차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행복한 새해 - 1953년〉이라고 쓰인 널빤지를 들고서. 멋진 작품이었다. 그 눈사람은 1월 1일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481/1054)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다. 눈길이 닿는 한, 소리가 미치는 한, 끝없이 눈 덮인 사로제끄에는하얗고 깨어지지 않은 태초의 고요가 내려 있었다. 사방으로 스텝이 비탈과 언덕과 계곡과 하늘이 펼쳐진 사로제끄에 짧은 한낮의 온기를 주었던 부드러운 빛이 스러지자 귀를 간질이는 미풍이 불어왔다. 그들 앞쪽으로 철길에서는 나란히 연결된 두 대의 기관차들이 연기와 증기를 뿜어 대며 기다랗고 울긋불긋한열차를 끌고 들어왔다. 연기가 고리 모양으로 (487/1054)

를 지어 보였고 그들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고 그들 모두가 자기만큼이나 그 파티를 즐거워한다고 믿었다. 
다정한 미소를 띤 그의 모습이 잘생겨 보였다 아직은 검은 눈썹에 검은 수염, 그리고 반짝이는 회색빛 눈에 희고 튼튼한 치아가 가지런한 부란니 예지게이,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그가 늙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를 미리 알 수있었다. 그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을 써주었다.
 그리고 부께이를 보란리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통통하고 친절한 그 여인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축배를 들자면서 그녀를 위해 옛날 아무다랴의 강둑에서 살았던 모든 까라깔빠끄 사람들을 위해 건배했다. 그는 또 까잔갑이 파티에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라며 그녀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난 그 사람이라면 신물이 난다우!」 부께이가 받아넘겼다. (493/1054)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아부딸리쁘와자리빠가 함께 있는 것이 기뻤다. 그들 부부는당연히 가장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자리빠는 맑게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신속히 한 가락에서 다른 가락으로 선율을 따라가며 만돌린을 연주했다. 그리고 아부딸리쁘는 가슴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나지막한 저음으로 노래를 이끌었다. 그들은 함께 활기차게, 특히 따따르족의 민요들을 〈알마끄-깔마끄〉 스타일로, 즉 서로 화답하는 식으로 불렀는데,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도 끼어들었다. 그들은 벌써 많은 옛 노래와 새로운 노래들을 불렀지만 싫증을 내기는커녕 갈수록 더욱더 열심이었다. 
예지게이는 자리빠와 아부딸리쁘 맞은편에 앉아 계속 그들을 지켜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을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 그 쓰라린 운명만 없었더라면.... (495/1954)

 당직실 근처에서는 아빌로프가 왔다갔다 하면서 서성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곤란하게 됐어요. 안 좋은 일입니다. 예지께.」 아빌로프가 겁먹은 표정으로 당직실 문을 흘끔거리면서 대답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저 사람들이 꾸찌바예프를 체포했어요.」
「뭣 때문에 ?」
「아부딸리쁘가 자기 집에서 쓰고 있던,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좀 찾아낸 모양입니다. 사실 그 사람은 매일 밤마다 뭘 쓰느라고 바빴죠. 그건 모두들 다 알고 있어요. 이제 너무 많이써버린 거죠.」
「그 사람은 단지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걸 쓰고 있던 건데요.」 (505/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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