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여름은 어느 해 여름보다도 더 더웠다. 땅이 바짝 마르고 몹시 뜨거워져서 사로제끄의 도마뱀들마저도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어떻게든 땡볕으로부터 피할 곳을 찾아 입을 쩍 벌린 채 목을 발발 떨면서 문턱에 앉아있을 정도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솔개들은 맨눈으로는 거의 볼 수없을 만큼 높은 곳까지 떠올라 몸을 식히려 하면서 가끔 가다 한 번씩 짧은 울음소리를 내고는 흔들거리는 신기루가 비친 뜨거운 공기 속으로 다시 잠잠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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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할 일은 여전히 해야만 되었다. 기차들은 계속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오갔고, 그중 많은 것들이 보란리-부란니를 거쳐 갔다. 그렇게 중요한 간선 철도에서 기차들의 운행이 중단되게 했다가는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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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시달리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작업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쇠로 된 물체는 말할 것도 없고돌이라도 만지려면 너무 뜨거워서 장갑을 껴야만 했다. 태양은 가마솥 같은 열기로 뜨겁게 내리쬐며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었고, 탱크차로 날라져 오는 물은 햇볕을 받는 동안 거의 비등점에 이를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옷은 이틀만 입고 다니면 어깨 부분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사로제끄에서는 아무리 모진 추위를 겪더라도 겨울에 일을 하는 편이 그런 여름 더위 속에서 일하기보다는 더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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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게도 보란리의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리고서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숨 막히고정신 차릴 수 없는 더위로부터 피할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었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인 나무 한 그루, 개울 한줄기 보이지 않았다. 사로제끄가 되살아나서 계곡과 정거장 주변이 한동안 푸릇푸릇했던 봄철에는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즐거웠었다. 그때 아이들은 공놀이며 숨바꼭질을 하거나 스텝으로 달려 나가 마르모트를쫓았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즐거웠다.(317/1054)

그러나 여름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게다가 그해에는 유례없는 더위가 아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정신까지도 고갈시켰고, 그 때문에 (318/1054)

아이들은 집 옆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며 기차들이 지나갈 때나 고개를 내밀었다. 한쪽 방향으로 얼마나 많은 열차들이 지나가고 또 다른 쪽 방향으로는 몇 번이나 지나가는지, 객차가 몇 량이나 매달렸고 화차가 얼마나 되는지를 세는 것이 그들의 놀이였다. 

그리고 때때로여객 열차가 간이역을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늦추기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그 열차가 설 것처럼 보이는지, 어쩌면 더위를 막아 보겠다는헛된 희망으로 팔을 들어 올려 햇빛을 가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열차를 쫓아 달려갔다. 

그러나 열차는 덜컹대며 그대로 지나가 버렸고 그럴 때면 조그만 보란리 아이들의 부러움 담긴, 어린아이답지 않은 슬픔은 차마 눈 뜨고 보기가 민망했다. (319/1054)

그해 여름에는 어머니들이건 아버지들이건어른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을 걱정했지만 아부딸리쁘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는 예지게이와 자리빠만이 알 수 있었다. 
그 무렵 자리빠와 예지게이는 아이들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던 중에이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좀 더 많은 것이 드러났다. 
그날 그들은 자갈을 새로 깔고 레일이진동으로 변형되지 않도록 철둑을 보강하기 위해 침목과 철길 밑의 틈서리에다 쇄석을 뿌려고르고 하면서 선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열차들이 지나가는 사이를 틈타 해야 되는 그 일은 정말로 지겹고 넌더리나는 노릇이었다. (320/1054)

정오가 다 되어 갈 때쯤 해서아부딸리쁘가 빈 깡통을 집어 들더니 뜨거운물이라도 좀 더 가져와야겠다며 측선에 놓인 (321/1054)

탱크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로를 따라 급히 걸어갔는데 아이들을 빨리 보려고 마음이 급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고 있었다. 뼈가 불거진 어깨 위에 빛바랜 윗도리를 걸친 그의 머리에는 지저분한 밀짚모자가얹혀 있었고 바지는 여윈 몸에 헐렁하게 걸려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끈 없는 작업화가 있었다. 
그는 아무것에도 주의를 돌리지 않고 침목위를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의 뒤쪽에서 열차가 다가왔을 때도 그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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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아부딸리쁘, 선로에서 벗어나요!
당신 귀먹었소?」 예지게이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듣지 못했다.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을 때에야 그는 철둑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러고 (321/1054)

나서도 기관차를 돌아다보지 않았고, 기관사가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보지 못했다.(322/1054)

전쟁 기간 동안, 포로 시절에도 그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지지 않았었다 - 물론 그때에는나이가 더 젊었었지만, 그는 19세 때 소위로 전선에 배치되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그는 정말로 머리가 세었다. 사로제끄의 백발이었다.
말의 갈기처럼 헝클어지고 숱 많은 그의 머리칼 여기저기에 희끗희끗한 터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다음에는 그것이 관자놀이로까지 퍼져내려갔다. 형편이 좋았던 시절엔 그는 잘생기고 호감 가는 사내였을 것이다. 넓은 이마에 매부리코, 돌출한 결후(結喉), 든든한 입, 그리고거기다 큼지막한 눈....... 그래서 자리빠는 씁쓸하게 농담을 던지곤 했다. 「당신은 운이 없어요, 아부, 당신은 무대에서 오셀로 역을 했어야옳아요.」 그러면 아부딸리쁘는 웃으며 이렇게 받아넘겼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 목을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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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 하는데 당신은 그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뒤에서 열차가 다가오는데도 얼른 비켜서지않는 아부딸리쁘의 행동 때문에 예지게이는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바깥양반한테 뭐라고좀 해줘야 할 겁니다. 그 사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나 한번 물어봐요!」 예지게이가 반쯤은 꾸짖는 투로 자리빠에게 말했다.
「기관사에겐 책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로위를 걷는 건 금지돼 있으니까요. 그 사람 어째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요?」자리빠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소맷자락으로 햇볕에 검게 탄 얼굴에서 땀을 훔쳐 냈다.
「나도 저이 때문에 두려워요.」 (323/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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