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어긋나는 프래니와 레인의 대화.
이유가 뭘까? 프래니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건지 너무 궁금한데 모임 있어서 나가려니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프래니(Franny)
햇빛이 찬연하게 비치고 있었지만 토요일 아침은 다시 두툼한 외투를 입어야 할 날씨였다. 주중에는 가벼운 코트로 충분했기에 예일 대학 경기가 있는 대망의 이번 주말에도 그 날씨가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모두의 바람과 반하는 날이었다. 역에서 열시오십이분 열차로 도착할 데이트 상대들을 기다리고 있던 스무명 남짓한 젊은 남자들 중, 예닐곱명만이 추운 실외 플랫폼에 나와 있었다. 나머지는 모자를 벗고, 난방이 된 대합실 안에서 두서넛씩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거의 예외 없이 대학생 특유의 독단적인 말투였다. - P11
"가방과 물건들은 숙소에 내려놓자, 그냥 문 앞에 던져놓으면 돼. 그러고 나서 점심 먹으러 가자." 레인이 말했다. "배고파 죽겠어." 그는 앞으로 몸을 숙여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아, 당신을 만나니 정말 좋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프래니가 말했다. "보고 싶었거든." 그녀는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고 얼마 되지 않아 전혀 진심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낀 그녀는 레인의 손을 잡고, 단단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깍지를 꼈다. - P20
"강의 조교처럼 말하네. 아주 똑같아." "뭐?" 그는 신중하게 말을 아끼며 말했다. "강의 조교와 아주 똑같이 말하고 있다고 미안해, 하지만 그래. 정말 똑같아." "내가? 강의 조교는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도 될까?" 프래니는 그가 기분이 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 P26
그러나 지금 당장은 자신에 대한 반감과 악의가 반반인 심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고느꼈다. "글쎄, 여기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곳에선 강의 조교는 교수가 자리를 비우거나 신경쇠약으로 정신이 없을때, 아니면 치과에 갔거나 뭐 그럴 때 강의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야. 대개는 대학원 학생이거나 그렇지. 어쨌든, 예를 들어, 러시아문학 강의라고 한다면, 조교는 버튼다운 칼라 셔츠에 줄무늬 넥타이를 하고 들어와 반 시간쯤 투르게네프를 트집잡기 시작해. 그러고 나서 할 만큼 했다 싶으면, 다시 말해 투르게네프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싶으면, 스탕달이나 그가 석사 논문을 쓴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야. 우리 학교 영문과에는 그렇게 작가들을 훼손하고 다니는 소인배 같은 강의 조교들이 한 열 명쯤 있고, 그 사람들은 너무나도 똑똑하셔서 거의 입도 열지 않지. 모순된 표현은 미안해. 내 말은, 그들과 논쟁이라도하게 되면 그들이 하는 거라고는 그 끔찍하게 선량한 표정을 하고는ㅡ" "당신 오늘 무슨 빌어먹을 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데, 알고 있어? 도대체 뭐가 문제야?" 프래니는 빠르게 담뱃재를 떨고는 재떨이를 조금 더 그녀 가까이 가져왔다. "미안해. 내가 고약하게 굴었네." 그녀가 말했다. - P26
"당신네 그 빌어먹을 영문과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 맨리어스 에스포지토. 아, 정말이지 난 그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시인이잖아, 젠장." "시인 아니야." 프래니가 말했다. "그것도 내가 끔찍해하는 이유중 하나야. 내 말은 그 사람들은 진짜 시인이 아니라는 거지. 그냥 출판이 되고 온갖 선집에 실리는 시를 쓰는 사람들일 뿐, 시인은 아니야." 그녀는 의식적으로 말을 멈추고는 담배를 껐다. 몇 분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듯했다. 갑자기, 마치 클리넥스로 닦아내기라도 한 듯. 그녀의 립스틱조차 한두 색조 옅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얘긴 이제 그만하자." - P30
"알았어, 알았다고. 오케이. 진정해.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건 이 정도고, 그게 다지만 말이야." 프래니가 말했다. "시인이라면 뭔가 아름다운 걸 해야 해. 한 페이지라도 시작했으면 뭔가 아름다운 걸 남겨야만 하는 거라고.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들은 단 한 개도, 단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남기지 않아. 아주 조금 낫다고 하는 이들은 사람들 머릿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어떤 것을 남기긴 해. 그러나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것을 남기는 법을 안다고 해서, 그게 시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절대 그냥 뭔가 지독하게 매력적인, 구문 형식의 똥일 뿐이라고 이런 표현 써서 미안, 맨리어스며 에스포지토며 그 형편없는 인물들이 다 그래." 레인이 느릿느릿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이 맨리어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한 달 전쯤이었나,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신은 그를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했어. 당신이ㅡ" "나 그 사람 좋아해. 그런데 사람들을 그냥 좋아하는 일에는 신물이 나. 정말이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잠깐 실례해도 될까?" - P32
시클러스의 여자 화장실은 엄밀하게는 거의 홀만했고, 특별한 의미에서는 그 못지않게 널찍한 느낌을 주었다. 프래니가 들어갔을 때 화장실 관리인은 없었으며, 사용중인 사람도 없는 듯 보였다. 그녀는 마치 그곳이 일종의 약속 장소인 것처럼 타일이 깔린 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서있었다. 이마엔 이제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입은 힘없이 벌어져 있었으며, 홀에서보다 더 창백해진 상태였다. - P34
그러다 갑자기, 그리고 아주 빠르게, 그녀는 일고여덟 칸중가장 멀리 있고 가장 특색 없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ㅡ다행히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은 아니었다ㅡ 문을 닫고는조금 힘겨워하며 문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화장실이라는 환경의 본질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 P34
그녀는마치 자신의 몸을 더 작게, 더 빈틈없는 개체로 만들려는 것처럼두 무릎을 단단히 붙였다. 그러고 나서 두 손을 세워 눈 위로 올리고는, 시신경을 마비시켜 모든 이미지를 공동과 같은 어둠속 깊이 잠기게 하려는 듯, 눈가를 세게 눌렀다. 그녀의 펼쳐진 손가락들은 비록 떨리고 있었음에도, 아니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이하게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는 긴장한 거의 태아와 같은 자세를 잠시 유지하다가 곧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고, 족히 오분은 울었다. 그녀는 히스테리 상태의 어린아이가 부분적으로 닫힌 후두개로 숨이 올라오려 할 때 목에서 내는 발작적인 끓는 소리로 슬픔과 혼란을 더욱 요란스럽게 드러내며 전혀 억누르지 않고 울어댔다. 하지만 마침내 울음을 멈췄을 때, 그녀는 그대로 멈추었을 뿐, 그런 격렬한 폭발과 내적인 분출 뒤에 따르게 마련인 고통스럽고 칼날 같은 들숨은 쉬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순간적인 극 변화가 일어나기라도한 것처럼, 그 변화가 그녀의 몸에 즉각적인 진정 효과라도 일으킨 것처럼 그렇게 멈추었다. - P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