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1 이 전쟁이 곧 끝나리라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오래전에죽었다. 다름 아닌 전쟁으로 죽었다. 그래서 곧 휴전이 될 거라는 10월의 소문에 알베르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는 이 소문들을, 독일 놈들 총알은 얼마나 흐물흐물한지 물러터진 배처럼 군복 위에서 뭉개져 버린다고 주장하여 프랑스 연대들을 웃음바다로 만들곤 하던 전쟁 초기의 프로파간다만큼도 신뢰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독일군 총알을 맞고 웃다가 죽어버린 친구들을 무수히 보아 온 터다. - P11
알베르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미남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훤칠한 키, 늘씬하고 세련된 몸매, 구불구불하고 풍성한 흑갈색 머리칼, 쭉 뻗은 콧날, 멋들어진 선으로이어지는 얄따란 입술. 또 눈은 새파란 색이었다. 알베르에게는 정말이지 밥맛없게 느껴지는 면상이었다. 여기에다가 항상화가 나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페이스를 조절할 줄 모르는 조급한 유형의 사내였다. 가속하는지 아니면 정지하든지, 둘 중하나였다. 그는 항상 가구를 밀때처럼 한쪽 어깨를 불쑥 내밀고 나아갔고, 누군가에게 다가올 때는 후다닥 달려왔으며, 의자에 앉을 때도 급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이게 그의 평소 리듬이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기묘하기까지 한 혼합이었다. 그의 귀족적인 거동에서는 지독하게 문명화된 모습과 근본적인난폭함이 동시에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이 전쟁이 그렇듯이말이다. 프라델 중위가 이 전쟁판에서 그토록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또 그런 성격과 체격이라면 조정 경기도, 어쩌면 테니스와도 잘 어울리리라. - P13
또 한 가지 알베르가 싫어하는 것은 그의 체모였다. 그는 온몸이 검은 털로 덮여 있었다. 털은 심지어 손가락 위에도 나 있 - P13
었고, 목젖 바로 아래의 옷깃 밖으로도 수북했다. 평화 시에는뭔가 수상쩍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면도를 했으리라. 물론 이런 걸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다. 이런남성적이고, 거칠고, 수컷스럽고, 뭔가 스페인적인 분위기가느껴지는 이런 털들을 말이다. 세실만 하더라도………. 뭐, 굳이세실 때문이 아니라도, 알베르는 프라델 중위를 좋아할 수가없었다. 무엇보다도 알베르는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가 공격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적진을 향해 돌진하고, 공격하고, 정복하는 것을 그는 정말로 좋아했다. - P14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는 평소보다도 풀이 죽어 있었다. 휴전 가능성이 그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렸고, 애국적 열정에 불타던 그를 김빠지게 만들었다. 전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프라델 중위를 절망에 빠뜨리고 있었다. - P14
그는 사뭇 불안스럽게 느껴지는 초조감을 내비치곤 했다. 장병들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너무도 답답했던 것이다. 참호안을 성큼성큼 돌아다니면서, 한 번만 더 일제 사격을 퍼부으면 적들을 박살 내는 최후의 일격이 될 것이라고 아무리 열정적으로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아주 조그맣게투덜거리는 소리뿐이었고, 병사들은 군화 위로 꾸벅꾸벅 졸며간간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은 단지 죽는다는 두려움만이 아니라, 하필 지금 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막판에 죽는 것은 맨 처음에 죽는 거나 마찬가지야, 세상에 이보다 더 멍청한 일은 없지, 이게 알베르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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