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1973년의 아이오와 시티 Iowa City에서 벌어진 어느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로 위를 달리는 낡은 포드 팔콘 컨버터블 차 안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때는 겨울이고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고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혹한의 날씨에 손마디가 빨갛게 변하고 콧물이 질질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때 누구라도 목을 길게 빼고 덜거덕거리는 그 차창 안을 애써 들여다봤다면 눈길이 절로 쏠렸을 텐데, 두 사람 중 연장자이자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는 그 추운 날씨에 깜빡하고양말도 신지 않은 모습이다. 추운 줄도 모른 채 한여름에 어딘가로 놀러가는 고등학생처럼 맨발에 페니 로퍼‘를 신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말이지만 이 연장자는 얼핏 보면 청년으로 착각할 만도 하다. 호리호리한 체격부터 브룩스브라더스"의 트위드 재킷에 플란넬 바지를 받쳐 입은 옷차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까지 청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적어도 주름으로 축 처진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P15
동승자는 체격이 더 크고 우람한 서른다섯 살의 청년이다. 구레나룻을 짧게 기르고, 충치가 있으며, 해지고 팔꿈치 쪽에 구멍까지 난스웨터를 입고 있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그 시각, 두 남자의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주류 매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정문 바로 밖에 점원이 보이고 그의 손에 들린 열쇠가 번득거린다. - P15
조수석의 연장자 존 치버John Cheever 는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 『왑샷 가문 몰락기』, 『불릿파크』등을 비롯해 여러 편의 경이롭고도 독특한 작품을 써낸 작가다. 이제 61세인 그는 지난 5월에 확장성 심근증으로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간 바 있으며, 알코올로 인해 심장에까지심각한 무리가 간 건강 악화 징후를 보였다.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사흘 후에는 진전섬망" 증상을 보이며 심한 난동을 피우는 통에 가죽구속이 입혀지기도 했다. 아이오와 주에서 얻은 일자리, 즉 이름난작가 수업의 기간제 교수 자리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일종의 통행권이었을 테지만 일이 계획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당시의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와 방 한칸짜리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독신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 P16
운전석의 청년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는 그곳에서 막 교편을잡은 신참 교수다. 그의 교수실은 치버의 교수실과 판박이며 치버의방 바로 아래쪽에 있다. 두 방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까지 똑같다. 카버 역시 캘리포니아 주에 아내와 10대의 자식들을 놔둔 채 홀로 이곳에 와 있다. 그는 오로지 작가의 꿈을 붙잡고 평생을 살아왔으나,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오기도 했다. 술에 빠진 지는 이미 오래되어 음주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와중에도 용케 두 권의 시집을 써냈는가 하면, 꽤 많은 소설을 써서 그중 여러 편을 변변찮은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 P17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들은 대체로 사회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경향보다는 상징적 경향에 치우쳐서 알코올중독 이론을 제시하는 편이다.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 대해 평하면서, 술이 "그 자신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죽이는 무기이자 "좀처럼 죽지 않는 끈질긴 벌레"가 되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시인 존베리먼의 유작 소설 『회복Recovery』의 서문에서 솔 벨로Saul Bellow"는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영감에는 죽음의 위협이 동반되어 있었다. 그 자신이 기다리고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라고 썼듯, 그는 산산이 무너질 터였다. 술은 안정제였다. 그것도 생명력을 갉아먹는 안정제였다." - P25
나는 그런 작품과 글을 다양하게 읽어나가던 중, 특별한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작가들은 물리적, 혹은 일련의 반복적 패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이자 동지였고, 멘토이자 제자이자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술로 끈끈하게맺어진 골치 아픈 관계의 사례는 아이오와의 레이먼드 카버와 존 치버 외에도 여럿 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1920년대 파리의 여러 카페에서 함께 술어 젖어 살았는가 하면, 시인 존 베리먼은 딜런 토머스의 임종 순간 누구보다도 먼저 그의 침대 맡을 지켜주었다. - P26
언뜻 들으면 비극적 삶 같고 방탕하거나 무절제한 사람의 삶 같지만 이 여섯 남자,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존 치버, 존 베리먼, 레이먼드 카버는 역사를 통틀어 명저로꼽히는 몇몇 작품을 탄생시킨 인물들이다. 소설가 제이 매키너JayMcInerney가 치버에 대한 논평에서 밝혔다시피 "성적으로 문제 있던 알코올중독자는 지금껏 수천 명에 이르지만 그중 딱 한사람만이 『세이디 힐의 가택 침입자The Housebreaker of Shady Hill』와 『진의 슬픔The Sorrows ofGin을 써냈다" - P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