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곁에 없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알렉스가 나직하게 말한다. 그는 말을 이으려는 듯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입을 닫는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그는 주차를 하려고 속도를낮추었고, 내가 그를 향해 돌아앉자 그 역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알렉스......." 다음 말을 잇기까지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널 만난 뒤로는 외로운 적이 없었어. 네가 있는 한 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아."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잠시 동안 그대로나를 바라본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해도 돼?"
처음으로 나는 농담으로 응수하지도, 냉소적인답을 던지지도 않고 싶은 기분이 든다.
 "뭐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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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느릿느릿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입을 연다. "난 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몰랐어." 그러더니 그가 다시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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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힘들어하실때, 난 모두가 괜찮아지기만을 바랐어. 아빠한테, 또 어린 동생들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또 학교에서는 모두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차분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 그러다가 열아홉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야. 널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처음엔 난 네가 모든 걸 연기하는 줄 알았어. 화려한 옷에, 이상한 농담에."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농담을 던지자 그의 입가에 벌새의 날갯짓처럼 작은 미소가 살짝 어린다.
"린필드로 처음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엄청나게 많이 물어댔지. 잘 모르지만, 꼭 네가 진심으로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더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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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고, 이상하게 대답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가끔 난 널 만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네가 나를 발명해주기 전까지는."
두 뺨에 열기가 확 몰려오는 바람에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꿈지럭거리며 가슴 앞에 무릎을 세운다.
"난 널 발명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닌걸. 그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음 할 말을 생각하는 알렉스의 턱 근육이 움찔거린다. 무게를 재보지 않고 말을 뱉는 법이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
파피. 또 만약...... 우리 사이가 변하더라도, 넌 영영 혼자가 아닐 거야, 알았지? 내가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테니까."
눈물이 고여 눈앞이 뿌옇지만, 눈을 깜박여 간신히 눈물을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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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열자 내 목소리도 차분하고 밝다. 누군가 내 갈비뼈 안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쥐고 남모를 상처를 손가락으로 쓸어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알아." 나는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도널 사랑해."
사실이지만,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느끼는 짜릿함과아픔, 사랑과 두려움을 담아낼 정도로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 순간은 지나가고, 여행은 계속되고,
우리 사이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 마치 겨울잠을 자다 굶주림에 깨어난 곰처럼, 몇 달간 잠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1초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 안에서 무언가가눈을 떴다는 사실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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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손으로 잠시 내 팔을 위아래로 쓸어주지만 그럴수록 더 심한 울음이 터진다. 내가힘들어할 때 누군가 잘해주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가 나를 가슴에 기대게 하더니 등에 양손을 두른다.
"혹시 돈을 내고 헬리콥터라도 불러서 타고 내려가야 하는 걸까?" 내가 내뱉는다.
"우리 그렇게 높이 올라온 건 아닌데."
"농담 아니야. 다리에 힘을 아예 실을 수가 없어."
"이렇게 하면 되지. 내가 널 안아 올려서 아주천천히 등산로를 따라 내려갈 거야. 아마 중간중간 아주 많이 널 내려놓고 쉬어야겠지만. 그런데 또 나를 시비스킷(대공황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전설적인 경주마의 이름-옮긴이)이라고 부른다거나 귀에 대고 ‘더 빨리! 더 빨리!‘ 외치는 건 절대 금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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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가슴에 안긴 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알렉스의 티셔츠에 온통 젖은자국이 생긴다.
"그리고 이게 전부 내가 너를 안고 산길을 1킬로미터 걸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너의 작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난 정말 엄청나게화낼 거야."
"1에서 10까지 중에 어느 정도로?"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한 발짝 물러서서 묻는다.
"최소한 7이지."
"너 진짜, 진짜 좋은 사람이다."
"버터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완벽하다는 뜻이겠지?" 그는 장난스레 대답하더니 양발을 넓게 벌리고 선다.
"준비됐어?"
"준비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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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알렉스 닐슨이 나를 품에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빌어먹을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완벽한 사람을 내가 발명할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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