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을 부인하는것도 거짓이었다. 공개재판에서 사람들을 고문하여 인정하도록 강요했던 범죄들은 대부분 거짓이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죽었으며,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감을 잃어버렸다.  - P198

러시아혁명의 주동자들이 동료혁명가들에 의해 처형될 때마다 역사는 매번 다시 쓰였다. 처형자들이 처형당했고, 심문자들이 굴라크로 보내져 자신이 심문했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책들이 금지되었고, 사실들이 금지되었으며, 시인들이 금지되었고, 사상들이 금지되었다. 그것은 거짓말의 제국이었다. 거짓말이라는 언어에 대한 공격은 다른 모든 공격에 필요불가결한 기초이다. - P198

오웰은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것은 그것이 ‘가혹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 것이 빅브라더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 P198

진실과 언어에 대한 공격은 가혹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만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지워버리고 증인들을 침묵시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침묵과 복종과 거짓을 강압한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거나 위험하게 만들어 아무도 감히 그러려고 하지 않게 된다면, 얼마든지 범죄를 영속시킬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옛말이 있다. 진실에 대한 상시적인 전쟁은 국내적으로나 전 지구적으로나 모든 권위주의의 기반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권위주의는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이다. - P199

윌링턴에 그 정원을 만들고 정원에 장미를 심으면서, 오웰은 특정한 토양에, 그리고 싫든 좋든 자신의 것이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상과 전통과 유대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또는 어쩌면 그는 하류 지향적 선택들을 통해, 자기 이마에 흘린 땀으로 자기 먹을 것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고 자기 염소들을 마을 공유지에 풀어놓아 풀 뜯게 함으로써, 그런 전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니, 그 도피가 취한 형태조차도 농촌의 목가와 전원적 이상에 관해 깊이 뿌리박힌 관념들로 가득했다. 그 역시 그런 영향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 P249

장미를 심은 그해에 그는 이렇게 썼다. 
"영국이 비교적 안락하게 살기 위해, 수억 명의 인도인이 기아선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도, 택시를 타거나 한 접시 딸기에 크림을 얹어 먹을 때마다 그런 사태에 동조하는 것이 된다."
설령 크림 얹은 딸기가 설탕 넣은 차와는달리 실제로 손수 생산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10년 후 그는 다시 그 주제로 돌아가 동료 영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인도를 해방시키든가 여분의 설탕을 얻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어느 편을 택하겠는가?"  - P249

나는 자연계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은 그림으로 포착될 수 있는 정태적이고 시각적인 미려함이 아니라, 패턴과 반복으로서의 시간 그 자체, 날들과 계절들과 해들의 리드미컬한 지나감, 달의 주기와 조수, 태어남과 죽음에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 조화와 구성과 일관성처럼, 패턴 그 자체도 일종의 아름다움이며,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그 리듬이 깨진다는 데 있을 것이다. - P256

에브리맨판의 두툼한 오웰 에세이 선집 서문에서 존 캐리John Carey는 이렇게 선언한다. 
"그는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법이 거의 없고, 어쩌다 그럴 때도 허름하고 으레 무시당하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 두꺼비의 눈알이라든가, 울워스에서 파는 6펜스짜리 장미 묘목 같은 것들에서 말이다." 나는 그가 자주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말하고 싶다.  - P256

그처럼 으레 무시당하는 것들은 엘리트계급의 확립된 아름다움이 아닌 다른 아름다움들, 일상적이고 평민적이고 무시당하는 것들의 어여쁨을 발견케 함으로써 아름다움의 정의를 확대하는 수단이 된다. 
그 탐색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인습에 매이지 않게 한다. 1984의 암울함조차 그의 외로운 반항자가 감탄하고 열망하고 즐기는 것들에서 그저 평범한 풍경과 붉은 산호 조각을 넣은 유리 문진 같은 것들에서 건져내는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 P257

"보거나 들은 것을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그저 보거나 듣는 것." 아마도 오웰의 가사 일기는 그런 기록일 것이다. 노동과 재배와 사소한 사건들의 짤막한 기술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어떠했으면 하는 바람이 별로 들어 있지 않다. 

서사ㅡ허구, 신화, 동화, 저널리즘ㅡ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갈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것이기 쉽다. 가령 정치가가 부패하고, 강이 오염되고, 노동자가 착취당하며, 사랑하는 이는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가장 안정적인 아동용 책들도 나름대로의 상실 위기를 담고 있으며, 없는 연결을 찾고자 한다.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존재하는 것이란 정태적이다. 그것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은혜로부터 실추되기 전, 또는 재결합, 시정, 그 밖에다른 형태의 복구가 이루어진 다음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는 만일 사태가 제대로 굴러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적어도 암암리에는, 가치이자 목표로서 들어 있다. 서사는 종종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옹호하고 복구하려는 욕망에 내몰린다.
- P259

긴장은 비서사적 예술에도 존재한다.
예술가 조이 레너드Zoe Leonard는 에이즈 위기 동안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며, 동료 예술가이자 활동가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에게 그런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자 워나로비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이, 이것들은 아름다워요.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싸우는 거예요. 우리가 화를 내고 불평하는 것은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돌아가고자하는 목적지는 아름다움이에요. 만일 당신이 그걸 놓아버린다면, 우린 갈 데가 없어져요."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바꾸기를 원치 않는 무엇인 동시에 가고자 하는 곳, 나침반 또는 북극성일 수
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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