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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담배 ㅣ 쏜살 문고
조지 오웰 지음, 강문순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책 대 담배> 가장 기억에 남는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하여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산문집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책, 작가와 관련이 있거나 자신의 경험이 깊게 녹아들어 있는 글이라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작가 조지 오웰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책이나 작가에 관한 한 조지 오웰은 상당히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약간의 위트를 가지고 글을 풀어내고 있다.
우선, 표제작인 '책 대 담배'에서 작가가 한 해 동안 책에는 약 25파운드, 담배에는 40파운드 정도의 돈을 썼다고 했으니 책보다는 담배에 훨씬 많은 금액을 썼다는 계산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애연가이니만큼 책과 담배를 비유하여 설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매년 출간되는 책을 추정치로 하여 한 사람이 1년 동안 평균 3권 정도의 책을 산다고 계산해보면 고작 1 년에 책에 들이는 돈이 1파운드 정도라는 결과도 보여준다. 대영제국인데... 흠, 이 정도면 심히 걱정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책을 읽지 않는 현상의 원인을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두지 않는다.
과거나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책 소비가 계속해서 저조하다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현상이 적어도 독서가 개 경주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 그리고 펍에 가서 한잔하는 것보다 재미가 없어서이지 돈이 훨씬 많이 들어서 ㅡ구입해서 읽든 빌려서 읽든 ㅡ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13)
독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결국 책을 재미없게 만든 작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매우 맞는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하여 개탄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구나...! 계속해서 '서평가의 고백'에서는 한 해 백 편 이상의 서평을 쓰는 사람들의 고충과 현실을 묘사하였는데 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써야 할 서평이 너무 많아서, 혹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여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50 페이지 정도를 읽어야 서평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서평을 쓰기도 하고, 책 같지도 않은 쓰레기를 들여다보며 "맙소사, 이런 걸 책이랍시고." 하는 절규를 내뱉는 이러한 작가, 또는 작가이자 서평가의 찬사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기 전까지 대부분의 책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평론이 객관적으로 정직하게 써진다면 열에 아홉은 "이 책은 하잘것 없다"일 것이고 평론가 당사자의 반응 역시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가 없고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의 평론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18)
서평가와 작가를 두루 거쳐본 오웰이 하는 말이니 거의 백퍼센트의 확률로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럼 책 살 때 무엇을 참고해서 책을 사야하나... 요즘은 서평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어서 책 사기 전에 당연한 순서로 미리 읽어보게 된다. 서점에 가서 옛날처럼 한 권, 한 권 다 들쳐보고 내 맘에 들어오는 내용일 때만 산다면 지금처럼 미친 듯이 책을 들이는 일은 줄어들까. 생각해보면 그땐 오로지 나의 흥미와 감을 믿고 샀었다. 물론 실패의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순식간에 책꽂이의 빈자리가 줄어드는 마법을 부리지는 않았었다.
오웰 자신의 작품을 어느 쪽에 두었는지 예로 들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은 가는 바다. 자신의 책은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 아닌 것이다. 그럼 어느 쪽에 속할까? 꽤 훌륭한 책일 것이다! 아무튼 세상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책들이 많이 있으며, "문명이 지속돠는 한 우리에게는 가끔씩 여가가 필요할 것이므로 가벼운 문학이 놓일 지정석은 언제나 있을 테고"(45) 그래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 필요한 것이라는 작가의 피력에 일견 동의를 하고 말았다. 파렴치하고 무례한 많은 손님들, 과다한 근무시간, 끔찍할 정도로 추운 겨울의 책방을 생각하면 넌덜머리가 나서 책방은 결코 운영하지 않을 것이고 또 오래된 책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에 더 이상 끌리지 않으며 요즘에도 이따금 책을 사긴 하지만 빌려볼 수 없을 때 뿐이고 더 이상 쓰레기 같은 책을 결코 사지 않는다(책방의 추억)니 그 또한 -너무 단정적으로 말해서 살짝 빈정이 상하긴 하지만 - 찬동할 수 밖에. 이렇게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작가의 태도는 내가 생각해도 꽤나 설득력이 있지만, 여자의 적은 여자, 작가의 적은 작가! 뭐 이런 논리가 성립되는 것인지... 책에 대해서도 작가, 서평가, 책방의 추억 등등 모두 비판적이기만 한데 작가는 그럼 왜 글을 쓰는 것인가?
그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나는 왜 쓰는가'에서 간단하게 나마 설명해 놓았다. 오웰이 자신이 대 여섯살 무렵 어른이 되면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습작기까지의 기간, 그리고 첫 책이었던 <버마 시절>을 출간하기까지의 배경을 주욱 설명한다.
내가 굳이 이런 배경 설명을 하는 이유는 작가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모르고는 그 작가의 글쓰기 동기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쓰는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ㅡ 적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처럼 혼란스럽고 혁명과 같은 시대에는 ㅡ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작가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한 가지 특정한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된다.(58)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중요한 동기를 제시하는데,
1. 온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거나 어렸을 때 자신을 막 대했던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다는 등등의 욕구. 이것이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것은 사기와 다름 없다는 것.
2. 미학적 열정. 외분 세계의 아름다움, 또는 단어와 단어의 올바른 배열이 주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려는 열정 등등.
3. 역사적 충동.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찾아내 그것을 후대를 위해 보존하고 싶은 욕구 등.
4. 정치적 목적. 정치적 이라는 단어를 가능한 한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쓸 때. 정치적인 편향이 없는 책은 이 세상에 단 한권도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중 앞의 세 충동이 네 번째 충동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웰이 말하길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화려하고 기교를 한껏 부린 책을 썼을지 모르고, 또한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버마에서의 제국 경찰 노릇을 5년간 하면서 일종의 팸플릿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권위에 대한 혐오감이 커졌고 생전 처음 노동 계급의 존재를 완전히 아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후 히틀러의 등장으로 전쟁이 발발했고 결정적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싸우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6년과 1937년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되며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는, 예술적 글쓰기로 만드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한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쓸 때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말 테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폭로하고 싶은 거짓과 관심을 둬야 할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책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최우선 관심사는 독자들이 내 생각을 듣게 하느냐다. 그러나 미적 경험이 없다면 책을 쓰는 일은 물론이고 장문의 잡지 기사를 쓰는 작업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63)
선전물 한 장을 쓰더라도 미적 경험을 중시하였고 노골적인 선전글을 쓸 때조차 전업 정치인이 본다면 관련성이 부족한 글이 상당히 많지만 자신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이는 오웰이라는 작가의 진실성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인 것이다. <카탈루냐 찬가>에서 작가의 이러한 진실성의 문제가 잘 드러난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프랑코와 공모했다는 누명을 쓰고 명예를 훼손 당한 일을 참지 못한 오웰은 작품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될 여러 챕터(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잘 드러내는 글인데 함께 내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변호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를 포함시킴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 것이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음을 곧 알아볼 수 있으며, 스스로 한갓 보도물로 만들어버린 그 행동을 수긍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다. 나는 우연히 영국에서 극소수만 알 수 있는 내용, 즉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했다. 내가 그 사실에 분개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그 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64)
이 작은 책은 내가 처음 읽는 작가 조지 오웰의 글이었다. 우화적인 소설도 싫어하고 전체주의라는 말도 정말 싫어해서 아무리해도 <1984>나 <동물농장>은 책장이 펼쳐지지 않았었지만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를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웰의 장미>는 나에게 여러모로 참 고마운 책이 됐다. 페미니즘과도 맞닿아 있는 작가의 책을 보면서 오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다른 책으로 계속해서 확장되는 독서 경험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잘 만들어진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