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책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문학이 존재한다는 것 ㅡ 머리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책이라도 막상 읽어 보면 재미있고, 흥분되고, 심지어 감동까지 줄 수 있다는 사실 ㅡ 은 예술이 대뇌 활동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P44
그렇지만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문명이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는 가끔씩 여가가 필요할 것이므로 가벼운 문학이 놓일 지정석은 언제나 있을 테고 박학다식함이나 지적 능력보다 훨씬 생존력이 뛰어난 순수한 기능이나 타고난 은총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P45
같은 취지로, 작품의 수준을 판단하는 문학적 잣대가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라면 버지니아 울프나 조지무어의 전집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데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 P46
-책방의 추억
하지만 우리 책방 제2의 수입원은 뭐니 뭐니 해도 대여 문고였다. 오로지 소설책 500~600권으로만 구성된 대여 문고는 여느 대여 문고처럼 "예치금 없이 2페니"만 받고 책을 대여했다. 책 도둑들이 이 같은 대여 문고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책방 한 곳에서 2페니를 내고 책 한권을 빌리고 나서 식별표를 떼버린 후 다른 책방에 1실링을 받고 팔아먹는 짓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범죄다. 그럼에도 책방 주인들은예치금을 요구해서 대여 문고 이용자 수를 떨어뜨리느니 차라리 어느 정도의 책은 도둑맞는 게 (우리 가게에서는 한 달에 열두 권 정도를 잃어버렸다.)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았다. - P50
그리고 한가지 놀라운 점은 영국의 고전 소설가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디킨스, 새커리, 제인 오스틴, 트롤럽 등을 대여 문고 도서 목록에 넣는 일은 전적으로 쓸데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작품들을 대여해 갈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세기 소설을 힐끗 쳐다보고는 "흠, 엄청 옛날 거네!"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디킨스 작품을 파는 일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파는것만큼 언제나 무척 쉽다. 디킨스는 사람들이 항상 읽을 의향이 있는 작가의 한 명인지라, 헌책방에서는 성경과 마찬가지로 꽤나 유명하다. - P50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미국 책의 인기가 점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출판사들은 이삼 년마다 이런 문제로 마음을 졸인다. 단편 소설이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읽을 책 한권 추천해달라고 대여 문고 담당자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첫 마디는 우리 문고의 한 독일 고객이 즐겨 하는 표현처럼 한결같이 "단편 소설은 말고요."나 "짧은 이야기는 빼 주세요."다. 이유를 물어보면 종종 단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에 익숙해져야 하는 고역을 치르기 싫기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그들은 첫 장 이후부터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장편 소설에 몰입하기를 더 좋아한다. - P50
그럼에도 나는 독자들보다는 작가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영국과 미국의 단편 소설 대부분에는 생기와 가치가 철저히 결여돼 있다. 그 정도가 대부분의 장편 소설들보다 훨씬 더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단편 소설은 충분히 인기가 많다. D. H. 로렌스의 단편 소설은 그의 장편 소설만큼 인기가 많다. - P53
진정으로 책을 사랑했던 때가 있긴 했다. 최소 오십 년은 된 책의 모습과 냄새와 감촉을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시골의 경매장에서 단돈 1실링을 주고 책 한 무더기를 살 때만큼 즐거웠던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예상치 못하게 구입한 책에는 독특한 운치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18세기 시인들, 고지명 사전들, 지금은 거의 잊힌 소설 희귀본들, 1860년대 여성지 제본판들이 그러하다. - P52
하지만 책방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책을 더 이상 사지않게 됐다. 한 번에 5000 혹은 1만 권 정도의 책이 쌓여 있는 장면을 보다 보니 책이 별볼 일 없어졌고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다. 물론 요즘에도 이따금씩 책을 사긴 하지만 빌려 볼 수 없을 때뿐이다. 그럼에도 쓰레기 같은 책은 결코 사지 않는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에 나는 더 이상 끌리지 않는다. 오래된 책을 보면 편집증 환자 같은 손님들과 죽은 금파리들이 마음속에서 너무나도 금방 연상되기 때문이다. - P52
-작가와 리바이어던
물론 정신적으로 정직하지 않은 것이 사회주의자들과 좌파들 전반의 특수한 현상이라거나 그들 사이에 아주 흔하게 퍼져 있는 속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어떤 특정 정치 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문학적 진실성이 훼손될 위험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정치 투쟁의 영역 밖에 있다고 주장하는 평화주의와 개성주의 같은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 주의로 끝나는 단어는 그 단어만 들어도 선전의 냄새가 풍긴다. 집단에 대한 충성은 필요하지만 문학이 개인의 산물인 한, 문학에는 독이 된다. 집단에 대한 충성이 문학 창작에 영향을, 그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것이 허용되는 순간 창의성은 왜곡되고 사실상 고사한다. - P8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모든 작가들의 의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이미 앞에서 말했듯 오늘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와 거리를 둘 수도 없고 두어서도 안 된다.
나는 정치적 충성과 문학적 충성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지금의 방식보다 더 선명한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그리고 마음에는 안 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을 기꺼이 한다고 해서 대체적으로 그런 일에 따르는 신념까지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 P85
작가가 정치에 참여할 때는 한 명의 시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참여해야지 한 명의 작가로서 참여해서는 안 된다. 예민한 작가라는 이유로 보통 정치의 지저분한 현실을 회피할 권리가 작가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작가도 바람이 새는 강연장에서 강연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무엇인가를 쓰고, 유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선거 운동도 해 보고, 전단지를 나눠 줘보기고 하고, 심지어 필요하다면 내전에라도 참전해 싸울 각오도 돼 있어야 한다. - P85
자신이 속한 당을 위해서는 무슨 일을하든 상관없지만, 자기 당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만큼은 절대 해서 안 된다. 자신의 글이 자신이 속한 당과는 별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고자 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일련의 사고 과정이 자신의 생각을 혹시 이단으로 이끌지 모를까 하는 걱정으로 포기해서도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비정통 사고를 감지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되겠지만 개의치 말아야 한다. 이십 년 전에는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작가로 의심받는 것이 작가에게는 나쁜 신호였듯, 요즘에는 반동적인 성향이 있는 작가로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나쁜 신호일 수 있다. - P85
갈등의 시기를 살아가는 창작 작가라면 자신의 삶을 두 영역으로 분리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적이거나 경솔한 짓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이것 말고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아탑에 스스로를 가둬 둔다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작가가 주체적으로 당의 기구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것은 작가라는 자아의 파괴를 부른다. 우리는 이 딜레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동시에 정치가 무척이나 지저분하고 품격을 낮추는 일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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