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물에 사로잡힌다. 내가 기질적으로 너무 메말랐거나 뼛속 깊이 잉글랜드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에 약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까운 곳에 강이 없으면 온전한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 Czestaw Milosz 의 시구 "우리는 상심에 빠지면 자주 강가를 찾는다"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예전부터 아플 때나 건강할때, 슬프고 쓸쓸할 때나 기쁠 때 자꾸만 강으로 발길이 향하곤 했다. - P19

처음 우즈 Ouse 강에 간 것은 10년 전 6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이제는 오래전 추억이 된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우리는 브라이턴에서 내 차를 몰고 가서 바컴 밀스Barcombe Mills 지역의 한 들판에다 차를 세워 두고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강변을 따라 걸었다. - P19

그해 봄에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푹 빠져있었다. 물 그리고 물이 던져 주는 상징에 심취한 면에서 서로 통하는 듯한 동질감이 느껴져서였다. 오랫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침울한 작가, 핏기 없는 안색의 신경쇠약증 환자, 아니면 앙칼지고 거만한 여자, 블룸즈버리의 답답한 잡담 모임의 원로로서 각인되었다. 내 생각에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읽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울프의 일기는 유머와 자연을 향한 전염성 강한 애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 P26

버지니아는 풍경을 대하는 감수성이 대단히 풍부했고, 그 영향으로 그녀의 작품에는 이곳의 백악질 계곡에 대한 인상이 충만히 배어 있다. 버지니아는 혼자, 그리고 별일 없는 한 매일같이 산책을 나섰는데, 이런 산책을 자신의 글쓰기에서 꼭 필요한 부분으로 여겼던 듯하다. 실제로 아샴Asham에서 신경쇠약을 앓던 중 과도한 자극을 받을 소지가 있어 산책도 글쓰기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일기에 다음과 같은 열망을 털어놓기도 했다. - P27

퍼를Firle 숲을 거닐며 머릿속을 감미로운 라벤더 향으로 그득 채워서 내일 일을 위해 정신을 온전하고 차분하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텐데. 모든 것을 속속들이 감지하면 금세 장갑처럼 꼭 맞는 문구가 떠오를 테고, 그런 다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먼지 이는 길을 달리면 이야기가 술술 풀릴 것이다. 해가 져서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시를 좀 쓰고 싶다. "육신이 녹아내려" 붉고 하얀 꽃으로 피어나는 듯한 기분에 젖어 친숙하면서도 생생한 시를 쓰고 싶다.

‘육신이 녹아내려‘라는 문구는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표현이다. 버지니아는 글쓰기의 과정, 즉 자신이 활개를 펼칠 수 있 는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할 때 물에 관한 표현을 즐겨 썼다. 
물로 뛰어들기, 물속에 잠기기, 가라앉기, 잠수하기 등에 비유하는 식이었다. 깊숙이 잠기고픈 열망이 내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끌린 지점이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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