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재생산 : 자본주의는 여성을 이중으로 억압한다.
생산과 재생산의 모순 관계에 대해 논쟁하면서
다음의 중요하고 새로운 발전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세계 임금 노동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의 54%가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13억 명이 넘는 이 여성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무급 노동의 부담 역시 지고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수가 자신시 노동시장에서 착취
당할 수 있도록, 즉 재생산 노동의 양을 줄이기
위해 자기 임금을 사용해서 유급 가사노동을
이용하고 있겠는가?(146)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인하게 되니 좀 충격적이다.
8 : 3,500,000,000(35억)
모든 종류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할 열망을 가진 페미니스트라면 자본주의가 만든 장애물을 피해갈 수 없다. 무엇보다 명확한 건 오늘날
8명의 남성이 35억 명의 사람(이들 중 70%는 여성이다)이 가진 것만큼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47)

마르크스는 생산적 노동을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확실히 독창적인 것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분석에 기초한다.
"생산적 노동이란 노동의 특정 내용, 또는 그것이 드러낸 특정한 유용성 또는 특정한 사용가치와는 그 자체로 전혀 무관한 노동의 질을 뜻한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의 노동은 생산적일수도 비생산적 노동일 수도 있다." - P138
마르크스는 재생산 노동의 특징을 특별히 다루지 않았지만, "그 외형적 분리를 넘어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필수적인 연결고리를 확립"했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생산, 순환, 경제적인 자본 재생산으로 구성된 자본주의 경제의 범주를 훨씬 폭넓은 사회적 물질대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사회적 물질대사는 사회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이것은 오로지 시장에만 주목하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은 외면하는 주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모든 생산방식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가사노동은 교환가치는 되지 못하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은 자신이 수행되는 바로 그 사적 영역 안에서 ‘생산적 소비‘로 행해진다. 이 과정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반드시 필요하다. - P139
재생산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꼭 잉여가치를 창출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면 어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재생산 노동이 노동력 상품을 ‘생산‘한다면 생산적인 것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적 · 문화적 억압은 여성이 경제적 보상 없이 개별 가정 내에서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을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다니엘 벤사이드는 이렇게 지적한다.
"시장에서 실제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 노동과 사적 행위를 측정하는 각각의 기준을 비교하기란, 예컨대 부엌일과 호텔 노동을 테일러주의 식으로 계량화하기란 어렵다. 측정 수단은 동의하기 힘든 자의적 선택에 달려 있다. 즉 어떤 사람이 가사활동을 하는 기간에 노동시장에서일했다면 벌 수 있었던 소득이 얼마인지, 시장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시장에서의 구입 가격)를 계산에 포함시킨다." - P140
노동자계급이 남성 · 여성 · 성인 · 아동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는 산업의 탐욕에 맞서 가족관계를 착취로부터 보호한 것은 그들의 생활 조건을 향상하기 위해 자본과 대결한 것을 뜻하기도 했다.
학교·병원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대중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노동자의 생활 조건이 개선되고, 재생산 노동의 무거운 부담 일부가 가정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이전됐다. 전 세계에서 노동자 대중이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폐지에 저항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에 재정 타격을 주며, 가정에서 주로 여성이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의 필요량을 증가시키기때문이다. - P144
최근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의 형태를 띤 자본주의는 착취를 증대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기타 노동자계급 조직을 공격해왔다. 그것은 또한 다음을 통해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기업의 민영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축소, 공교육과 보건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긴축 정책, 대중교통 및 기타 필수 서비스의 요금 인상.
이런 긴축은 노동자 민중의 가정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나라들의 외채 문제를 규탄할 때,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취해지는 긴축 정책으로 여성들이 경제적 보상 없이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144
자본주의 생산은 임금노동을 착취해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모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없이 그런 착취도 불가능하다. 민중 대다수를 점차 임금노동자로 전환하면서, 자본은 재생산 과정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낸시 프레이저가 주장하듯이 이것은 다음의 모순을 반영하는 반복적 위기로 이어진다. "(이 모순은)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재생산이 동시에 분리되고 연결되는 경계에 있다. 경제 내부도 아니고 가정 내부도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의 두 가지 필수 구성요소 사이에 위치한 모순이다." - P145
우리가 건설하려는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 없이 성 불평등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8명에 여성 4명이 포함될 수 있도록 싸우자는 건가? 아니면 가장 가난한 사람끼리 성평등을 이루자는 건가?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핵심, 즉 자본 축적이라는 문제를 제쳐두고 여성해방을 이론화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 P147
물론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투쟁과 사회적 재생산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투쟁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지배계급이 강제한 분열과 반목에 맞서는 길,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갈라놓은 것을 통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는 이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왜냐면 우리 여성은 아마 처음으로 그 과제가 우리, 즉 노동자계급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레스테 무리쇼, 안드레아 다트리 글 · 김요한 옮김Celeste Murillo and Andrea D‘Atri, "Producing and Reproducing: Capitalism‘s Dual Oppression of Women" 2018년 9월 11일 (레프트 보이스>에 영어로 게재됨.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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