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사라진 그날 밤, 그 식당이 처음 내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어딘가 맞아떨어지는구석이 있었다. 그날 밤은 내가 조지 오빠 맞은편에 앉아 아빠 양복 재킷을 걸치고 덜덜 떨면서 방금 본 것을 이해해보려 애쓰던 밤이자, 얼마 안 있어서는 조지 오빠와 함께 우리 오빠 방의 공기를 바꾸어놓던 밤이었으니까. - P325
그 여자는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 주방 문 쪽으로 돌아갔다. 비둘기들이 내 뒤에서 소리를 냈다. 그 여자 역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 같아보였다. 특별히 속물 같거나 다혈질이라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인기가 많거나 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닭고기, 다임과 버터에 푹 담근 그토록 맛 좋은 온기를 가진 닭고기를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오직 닭고기의 맛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맛.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손에서 음식은 그 자체로 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금치는 시금치가 되었다. 좋은 농장에서 자라나고 소금과 열기, 그리고 그녀의 관심을 받아 이파리 많고 널찍한 자기 자신 안으로 편안히 녹아들어 있는 시금치. 마늘은 그 생기 있는 성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토마토는 쇠고기만큼 중요한 것같이 느껴졌다. - P327
한 가지만 더, 아빠가 말했다. 너 그날 뭔가를 보았지, 그렇지? 달빛이 아빠 얼굴을 훤하게 비추었다. 언제요? 내가 알면서도 물었다. 아빠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의자 팔걸이에 고개를 기대고 있었다. 맞아요. 내가 말했다. 네가 뭘 보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겠다. 아빠가 사진첩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말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싶구나. 괜찮겠니? 괜찮아요,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지프가 돌아올 수 있니? 아니요. 아빠는 스스로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처럼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그렇게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 P354
조지프도 무슨 능력이 있었니? 나는 눈을 감았다. 네, 오빠도. 삼십분 정도, 아빠는 이마를 누른 채 발을 흔들었다. 고개를저었고 한쪽으로 기울였다. 핀볼 하나가 아빠 몸속에 떨어져 뼈와 힘줄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그리고 아빠는 그 핀볼을 피하려는 것처럼 이 새로운 소식을 이리저리 피하며 밀어내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거나 생각하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계속 눈을 감고 있다가 조금 잠을 잤다. - P355
알고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오빠가 말했다.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나는 귀를 오빠 입에 바짝 갖다 대야 했고, 너무 조용해서 말들을 놓치지 않고 다 듣기는 아주 어려웠다. 그 목소리로 오빠는 내게 의자가 가장 좋았노라고, 삶을 지속할수 있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었노라고 속삭였다. 가끔씩은 침대에도, 옷 서랍에도, 테이블에도, 소탁자에도 들어갔었노라고. 시간이 걸렸고, 거의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했다고. 그렇게 멀리 가 있는 동안은 좋았지만, 돌아오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어, 오빠가 말했다. 여러 가지 다른 것도 선택해봤어. 그런데 그 의자가, 최고야.
나는 더 잘 듣기 위해 오빠가 말하는 동안 눈을 감았다. 놓칠 듯말 듯한 말들. 우리 손 위의 햇살. 병원 침대를 팽팽하게 감싸고 있던 톡 쏘는 표백제 냄새를 희미하게 피워 올리던, 침대 시트. - P383
있지, 오빠 나 부탁이 하나 있어. 기계들이 우리 옆에서 윙윙 돌아갔다. 문밖으로 간호사 한 명이 걸어갔다. 고무 밑창 신발을 신은 부드러운 발소리. 오빠가 대답 대신 내 손을 가볍게 힘주어 잡았다. 오빠에게는 감히 우리 오빠에게는 보통 부탁이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에게 뭔가를 실제로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학교에서 조지 오빠를 보게 해준 적이 있었을 뿐, 내가그 오랜 시간을 같이 놀아달라고 졸랐어도 오빠는 엄마가 뇌물로 새 과학책을 사줄 때에만 나랑 놀아주었다. 오빠가 충동적으로 나를 한 번 안아준 것은 그날, 오래전, 내가 입에 대해서 발작을 일으키고 나서 응급실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우리는 같이 놀러나가지 않았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고,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 때로 나는 오빠가 내 이름을 잊어버렸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오빠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 P384
눈길을 낮춰 베개 한구석에 고정시킨 다음 가장자리의 솔기를 따라가면서, 내가 의자에 그어놓은 선에 대해서 오빠에게 말했다. 나는 오빠에게 앞으로는 꼭 그 의자만 선택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의자는 말고. 다른 어떤 물건도 말고 그것만.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알 테니까. - P384
볼펜으로 그은 선일 뿐이야. 내가 말했다. 하지만 쉽게 눈에 보여. 나는 더 가까이 몸을 숙였다. 오빠의 심장이, 바로 옆 스크린 녹색 화면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부탁이야, 내가 말했다. 오빠의 눈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 눈이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말 듣고 있어, 오빠? 응. 말이 되지? 돼. 그렇게 해줄 거야? 오빠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응. - P385
이건 오빠가 카드 테이블 의자를 선택한 것과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다만 내 선택으로 난 세상에 남을 수 있었고, 오빠는 그럴 수 없었다는 점만 빼면.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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