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
‘2부 진정한 민주주의‘ 읽고 있는데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또 대통령들의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뉴스나 다른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던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모습을 미국인의 말로 읽으니 속은 시원하다.
한편으로는 지금 20 년도 전에 쓰여졌던 글을 읽는 이 시점에도 제국주의적 정책 방향은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고 경제 블럭화를 강화하는 미국의 행태는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세계화를 외치던 그 입들로 다시 끼리끼리 편가르기 하면서 자기네 편으로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 같이 힘없는 나라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느라 바쁘고 정부도 기업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하필 두 어깨들 사이에 끼어서리...
국내 정치도 한심하긴 매 한가지다. 부자를 위한 감세는 있어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싸워야 할 정부는 없다. 나는 할머니들을 희생해서 국익(?)을 취하고 그것으로 얻은 비굴한 고기 한 점 더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는데 왜 국익이라고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모르는 정부는 철퇴를 맞아야한다.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건가. 명분도 실리도 다 잃는 정책 기조에 분노한다.
차라리 귀막고 눈가리고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일이나 하러 가고 싶다. 이 나이에 일하러 나가는 것도 엄두가 안나지만 내 일에 치여 아무 것도 안듣고 싶다.아무 것도 몰랐으면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든 혁명가든, 자신의 무지에는 무관심한 채 본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중의 생명과 자유를 희생시키게 해서는 안된다.˝(29면)
잘못된 길로 가는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기 위해 매번 거리로 나가야하는 건가? 피로감이 저절로 몰려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러한 문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하워드 진은 어떻게 절망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희망적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걱정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아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과 같은 지치지 않는 신념을 갖고 싶다.
어제 ‘1부 행동하는 양심‘ 읽으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게 되었다. 잘 몰랐거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몰랐던 것을 알게되니 책 읽는 재미가 한층 배가 되는 것을 느꼈다. 1999년 시애틀 운동, 로자 파크스, 공민권 운동, 피케팅, 저항의 서약, 과두제의 철칙, 비폭력 직접 행동, 그리고 반전 운동의 대표적 구호가 되었던 ˝우리 이름으로는 안돼(Not in our name)˝ -˝당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의 이름을 팔지 마라˝ 라는 뜻 - 같은 용어들의 뜻, 그리고 ˝파업, 보이콧, 복종하지 않기, 복잡한 사회구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능력 등 이 모든 행동은 여전히 국가나 기업의 무시무시한 권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18면)라고 말하는 하워드 진의 글에서 다시 희망을 찾아보기로, 눈 감고 귀 막고 싶은 심정을 다시 돌이켜보려 애썼다.
사실 따지고보면 지구에 가장 해가 되는 국가는 끊임없이 자기 배를 불려가는 미국이 아니던가. 안끼는데없는 트러블 메이커다! 하나 해결도 못하면서 더 큰 불안을 조장하는 국가다! 하워드 진의 글을 읽으며 더 굳어지는 생각이다.
시애틀 저항이 우리를 낙담시키는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가능성의 불꽃만 보여 준 것일지라도, 그 저항은 권력과 힘없는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원칙을 되돌아보게 해 줬다. 언론이 홍수처럼 쏟아 내는 무의미한 기사들이 사회운동의 역사를 묻어버린 탓에 쉽게 잊힌 그 기본 원칙을 상기시킨 것이다. - P19
물론 몰려든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앞다퉈 담아간 것은 시애틀 거리의불길과 깨진 유리창이었다(사실이 불길도 경찰이 사용한 폭발성 최루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유리창을 깨뜨린 실제 당사자, 경찰 마찬가지로, 아나키즘 철학에 무지한 언론인들은 시위자들을 ‘아나키스트‘로 묘사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분노 때문에 거리를 행진하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방해한 사람들 대부분이 평화적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 그것은 비폭력 직접행동이었다. - P19
미국 역시 똑같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보냈지만 이기지 못했고, 결국 휴전 협정에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전면전을 펼친 인도차이나에서도 결국 철수해야 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폭격을 이 조그만 반도에 퍼부었는데도 말이다. 오랜 군사 개입 덕택에 양키 제국주의를 구가할 수 있었던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어마어마한 국부와 무기를 갖고 있는 강대국 미국은 좌절을 겪었다. 쿠바혁명도 막지 못했고, 칠레에서는 성공적으로 반혁명을 조직했지만, 니카라과혁명은 막거나 저지할 수조차 없었다.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은 북아메리카 사람들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막강하다고 여겨지던 세력이 무력하다고 여겨지던 세력을 지배하는 데 실패한 증거를 신문의 머리기사를 통해 매일 같이 보고 있다. - P27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잃을 것이라곤 권력과 폭력에 대한 환상밖에 없다. 그 대신에, 우리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 사용되는 수단이라면, 그 수단이 혁명적 변화를 위한 것일지라도 인권은 지켜야만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부는 혁명가든, 자신의 무지에는 무관심한 채 본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중의 생명과 자유를 희생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 P29
나는 비관주의를 이해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증거로 따져 봐야할 문제다. 강력한 증거일 필요는 없다.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면 그만이다. 희망을 위해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비록 모든 경우마다 "역사는 보여 준다", "역사는 증명한다" 같이 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 P31
나는 이런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이것은 자신들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고, 행동이 단속적이며, 고통받아 온 집단들이 수세기에 걸쳐 사용해 온 방법이다. 미국의 흑인 반란은 이 방법에 ‘힘을 신중하게 사용하기‘라는 특징을 부여했다.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최대한의 변화를 이루는 이 방법은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비폭력직접행동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해서 우리의 상상력이 한계에 도달하지 않는 한, 그 형태 역시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다. 연좌농성, 자유 승차와 자유 행진, 기도순례, 백인 전용 수영장에 들어가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기도 시위, 자유투표, 자유 학교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리고 또 어떤 형태가 등장할지그 누가 알겠는가?
그 형태를 막론하고 비폭력직접행동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비폭력직접행동은 현상 유지 상태를 뒤흔들어 놓고,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 안주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상처를 표현해 주고, 불의를 폭로하고, 크든 작든 기존의 모든 개혁이무능함을 드러내고, 긴장과 불화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권력자들을 압박해 그런 압박을 받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빨리 사람들의 불만을 해결하게끔 만든다. - P52
1976년, 또다시 선다형 문제(대통령선거)가 제출됐다. 더 나은 후보나 더 나쁜 후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나라의 미래가 다음번 대통령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구경꾼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먼 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높은 세금, 높은 물가, 실업, 낭비, 전쟁, 부패에 질려 버린 미국 시민들이 미국 전역에서 1930년대의 노동자 봉기나 1960년대의 흑인 반란보다 더 거대한 변화의 요구를 조직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 P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