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바다 앞 트리에스테
유학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목에 끌려서 『새, 거의 산문으로』라는 사바의 시집을 사 읽은 적이 있다. 쉬운 이탈리아어로 썼구나란 생각은 했지만 사실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결혼한 상대가 알고 보니 둘도 없는 사바의 팬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사바가 왜 위대한지 그 비밀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않고 시집만 차례로 건넬 뿐이었다. 그렇게 사바의 이름과 함께 트리에스테라는 지명이 내 안에서 좋은 와인처럼 숙성해갔다. - P158
어쩐 일인지 남편은 유대인에게 늘 깊은 애정을 보였다. 아마 성서에 나오는 그들의 고단한 운명과 유랑에 공감해서일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중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유대인을 숨겨준 세대에게 그런 애정은 치열한 삶의 한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에는 어두웠지만, 어쩌다 유대인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 끈질기게 반론을 펴곤 했다. 그가 죽은지 이틀째인가 또다시 중동전쟁이 발발해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바다건너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으 - P161
니 이탈리아인들도 방관할 수 없는 사태였다. 페피노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친구들은 말했다. 다시 몇 달이 지나남편과 친했던 유대교 랍비로부터 페피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스라엘의 어느 언덕에 올리브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는 편지를받았다. 그런 남편이었으니 유대인 사바를 애틋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 P162
남편이 죽고 두번째 맞는 여름, 트리에스테를 방문할 기회가생겼다. 생전에는 끝내 함께 가지 못한 도시로 일본에서 온 손님을 안내하게 된 것이다. 현대 조각의 선구자인 마르첼로 마스케리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트리에스테의 고지대 소나무 숲속에 있는 그의 집은 농가풍의 하얀 벽이 눈부셨다. 아틀리에도 소박하고 심플했으나 본질적으로 고급스럽고 모던한 모양새였다. 그날 밤 마스케리니는 친구들을 불러 우리에게 파티를 열어주었다. 향기로운 소나무 아래 아르헨티나인 기타리스트가 자기 나라식 바비큐를 차려주었다. 북국의 긴 황혼이 지고 드디어 밤이 오자 다함께 집안으로 들어가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P167
이튿날 소나무 숲속 조각가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여름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언덕길을 달려 역으로 향하면서 나는 다음에는 혼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뭘 하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트리에스테의 길을 혼자 걸어보자, 부두에 서서 트리에스테의 바다를 바라보자…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깎아지른 낭떠러지 길을 달렸다. 창 너머 멀리 아래쪽에는 하얀 파도가 바위에부서지고, 여기저기 돛단배가 흩어진 사바의 눈처럼 파란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호메로스, 조이스, 그리고 사바가 사랑한 율리시스의 바다가 여름 햇살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 P169
-철도원의 집
아버지가 철도원이었던 남편의 가족은 로마-밀라노 본선이 밀라노 중앙역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오르막길에 있는 선로 옆 철도관사에 살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시어머니는 네 아이를 키운 그 공동주택을 떠나지 않았다. 기차는 제방 위를 달리고 선로와 집 건물 사이에는 정원이 있어 포플러 가로수를 심고 화단도 꾸며놓았지만, 이른 아침 화물열차의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는 머리 바로 위에서 울리는 듯했다. 잠자리에서 아득한 기적 소리를 들으며 상상에 빠지는 장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머리에도 등장한다. 최근에 읽은 미국 작가 폴서루도 매력적인 현대판 오디세이 [그레이트 레일웨이 바자] 도입부를 위해 동부의 도시에서 보낸 소년 시절 침대에서 듣던 먼 기차 소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차디찬 겨울날 아침 내가 잠자리에서 들었던 화물열차의 삐걱거림은 좀더 불길하고 가망 없이 느껴져, 갓 시작된 결혼생활에 대한 불안을 부채질했다. - P174
오래전 피에트로 제르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철도원>에 대해 쇼노 준조가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1956년 작품이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해가 1958년이니 이미 일본에서 봤을 법도 한데, 그 시절에는 외화가 일본에서 개봉하기까지 아마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로 가기 전 이삼년은 영화관에 갈 여유도 없이 살았으니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던 남편과 이 영 - P186
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니 의외였다. 훨씬 전에 나온 비토리오데시카 감독의 <밀라노의 기적>은 도쿄에서도 봤고 그후 유학생활을 한 파리에서도 본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의 무대가 시댁 옆을 달리는 기찻길 건너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폭격을 당했는지 아니면 그저 변두리인 탓인지 전후 몇 년간 거기에는 온통 가건물뿐이었다고 한다. 내가 밀라노에서 처음 세든 아파트도 그 지역에 있었는데, 남편에게 들으니 당시 집주인은 폐품 수거로 번 돈으로 땅을 사들여 지금 같은 부자가 되었단다.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했는데도 <철도원>이라는 영화는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쇼노 준조의 글은 인간 냄새가 나는 좋은 영화라는 대목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꼭 보고 싶다고 줄곧생각해왔다. - P187
영화를 보고 나는 남편이 죽고 이십 년이 넘도록 왜 이 영화를보지 않았을까 의아할 지경이었다. 영화 속 대사들은 하나같이 그 기찻길 옆 집에 살면서 배우고 들은 내 이탈리아어의 원점에 있는 것들이었다. 쇼노 준조의 글을 읽은 무렵에 (남편이 죽은 지 오 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익숙한 밀라노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무렵일 것이다) 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나는 온몸이 녹아내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으리라. 영화 초반부에 술 취한 주인공이 밤중에 귀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이 다들 나갔는지 사방이 캄캄하다. 그 순간 내 안의 누군가가 아, 스위치는 왼쪽에 있는데, 하고 말하며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철도관사는 어느 곳이나 방 배치가 비슷했고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도 밀라노-로마 본선의 선로변에 있는 시댁과 판박이였다. 남편이 그 영화 이야기를 하지 - P188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누워 있겠다 하고는 그길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불과 이삼년 후 나온 이 영화를. 남편은 필시 볼 수 없었으리라. - P189
- 무대 위의 베네치아
몇 년 전 여름휴가때 토마스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이탈리아어로 읽었다. 젊은 시절 때 이와나미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집어든 것은 아름다운 장정 때문이었다.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보라색 상자에 든 심플하고도 고급스러운 장정이 인상적인데, 타자기와 컴퓨터로 잘 알려진 올리베티사가 크리스마스에 자사 직원과 단골 고객에게 증정한 이탈리아어판이다.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에서는 매년 홍보부에서 까다로운 기준으로 엄선한 작가에게 삽화를 의뢰해 아름다운 단행본을 제작한다. 이탈리아 작품도 있고 외국문학도 있는데, 거의 기존 텍스트를 사용하지만 종이 종류에서 레이아웃까지 디자인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나도 운좋게 몇 권 구해 소 - P19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처음 읽은 젊은 시절에는 그저 뇌의근육(이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을 써서 내용을 이해하기 급급했기에, 이 책 역시 누구나 알 만한 줄거리밖에 머리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비스콘티의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여러 사람 - P194
들에게 회자되면서 나 역시 어느새 이 작품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원래 토마스 만의 작품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크뢰거」 정도만 읽고 계속 손대기를 미뤄왔는데,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뤼베크에 사는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중세 대성당을 직접 보는 듯 그때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동했다. 그러한 특질, 특히 원문의 문체를 독자에게 여실히 전해주는 아니타 로의 번역도 충격이었다. - P195
그러나 이 첫번째 방문으로 내가 베네치아를 이해했다면 거짓말이다. 비슷한 경험이 아주 없진 않으나, 특히 베네치아에서는물위에 뜬 둥지 같은 도시의 매력에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작은 섬이자 도시는 판단 기준이 그간 방문한 도시들과 크게 달라서 뭐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솔직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베네치아가 폐쇄적인 도시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찾아갈 때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발하며, 지금껏 알고 있던 것이 일부에 불과하다는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매력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방문자를 놀라게 한다. 수면에 반짝이는 석양빛이 끊임없이 물결에 부서지듯, 늘 한정된 시간 속에 나타나 느닷없이 보는 이를 덮치지만 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베네치아는 그런 아름다움을 조금씩 드러냈다. - P199
아무리 한지네 일행과 함께라지만 알베로니의 펜션에서 보내는 시간은 못 견디게 지루했다. 이삼일 지나자 나는 더이상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매일 아침 버스와 연락선을 갈아타며 베네치아로 나갔다. 관광안내서를 따라 미술관과 성당을 방문하고,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메르체리에라는 좁디좁은 중심가 양쪽을 장식한 눈부신 쇼윈도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때로는 리알토 다리 난간에서 몸을 내밀어 쉴새없이 오가는 곤돌라와 수상버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기분이 내 안에 계속 남았다. 아직 베네치아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 P200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배경을 이 도시로 설정한 토마스 만의 후각은 옳았다. 그 숨막히는 여름이야말로 관광객이 흘러넘치는 베네치아의 무대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섬‘이기에 이미 완결되어 있는 베네치아는 ‘무대‘가 됨으로써 이중의 완결성을 획득한다. 토마스 만은 배겨이 지닌 이런 완결성을 이야기와 주인공의 완결성으로 연결한다. - P207
그러나 환상의 시간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현실로 회귀한다. 터무니없는 꿈을 현실과 맞바꾸며 살아온 베네치아는 어느새 소리없이 다가온 멸망이라는 운명의 무게를 느끼고 문득 진심 어린한 숨을 토해낸다. 언젠가 호텔방 머리맡에서 들었던 은밀한 물소리도 그런 순간에 나온 베네치아의 혼잣말이었는지 모른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12월에 모임이 있어 베네치아를 찾은 적이 있다. 관광객이 없는 계절의 베네치아는 처음 보았다. 참석자들은 아침 여덟시반 행사장에 도착하라고 해서 나는 여덟시쯤 호텔을 나섰다가 신기한 광경에 맞닥뜨렸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아침이었고, 얼어붙은 공기 속에 안개가 자욱이 끼어 코앞의 가구점 쇼윈도도 가물거렸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 P207
호텔과 옆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만한 좁은 골목이 있고, 그곳을 통과하면 대운하의 수상버스 선착장이 나올 터였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려는 참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한사람, 또 한 사람, 출근하는 듯 보이는 남녀들이 호텔 앞 광장을 바쁘게 지나쳐갔다. 내가 놀란 것은 그 무리 속 여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돌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걸음을 재촉한다는 사실이었다. - P208
여름날 귀를 간질이던 높고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옷차림. 대부분 검은색이나 진녹색의 긴 망토를 두르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는 몇 년전에 본 루칠라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그때 다소 무대의상 같다고 느꼈던 그녀의 옷차림은 베네치아 여자들이 매서운 겨울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려 고안해낸 무장이었던 것이다. 연극의 계절은 지난 지 오래지만 그녀들은 등장인물임을 잊지 않고 등을 곧게 편 채 각자 맡은 무대를 찾아가듯 말없이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어쩐지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겨울의 베네치아 여자들에게 눈길을 빼앗긴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 P208
|